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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도 무섭지만 집에 있으면 폭발할 듯 답답”… 주거빈곤 위기의 아이들

지난달 24일 방문한 김지혜양(가명·18)의 집 내부 모습. 마땅한 수납공간이 없어 테이블과 책상 위아래로 짐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지혜는 남는 공간에서 잠자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한다. 최현규 기자


김애란 소설 ‘벌레들’의 주인공은 좁고 어두운 집에서 넓고 밝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이사를 오고 나서야, 그간 내 몸이 제한된 동선에 꽤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간은 내가 내 집에서 크게 움직여도 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고 했다.

이사를 가지 못한 김지혜(가명·18)양은 그 낯섦을 넓은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만 느낄 수 있었다. 집보다 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공간, 성인 걸음으로 가로 8걸음 세로 3걸음을 움직이면 더 이동할 수 없는 공간, “언제 무너지고 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그 공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지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네 살 위 언니가 대학 가기 전에는 4명이 살았다.

경기도 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지혜네 집은 과거 이주민정책지원으로 지어진 무허가 가주택이다. 네 가구가 살 방이 있지만 대부분 지붕이 내려앉아 생활이 어렵다. 지금은 지혜네만 남았다. 지혜의 할아버지는 “집이 지어진 지 50년은 됐다”고 말했다. 지혜가 이곳에 올 때 집은 마흔 살이 좀 넘었다. 지혜는 일곱 살이었다. 당시 부모는 이혼한 뒤 딸들을 조부모에게 맡기고 행방불명됐다. 몸이 편찮은 조부모는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 112만원과 국가유공자인 할아버지의 국가지원금 50만원으로 생활 중이다.

지난달 24일 방문한 지혜네 집은 비좁고 어지러웠다. 6∼7평 남짓한 방의 냄새에는 여름과 곰팡이의 눅눅함이 배어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짐들은 높고 불안하게 쌓여 있었다. 가로 벽 한 편에 주워온 테이블 2개가 기다랗게 놓였다. 그 위아래에 이불, 항아리, 로션, 저금통, 상장, 오래된 약 등 온갖 짐이 널브러져 있었다. 90도로 꺾인 또 다른 벽에는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 옷 수십 벌이 개어져 쌓였다. 의자가 놓일 공간에 책가방, 교과서, 파일 철 등이 역시 가득 찼다. 수납공간 대신 누런 박스들이 쌓여 있고, 벽 곳곳에 박힌 못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은 겉옷들이 걸렸다.

지혜는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직사각형 방에 세 명이 세로로 누워 자는데, 160㎝의 지혜는 몸을 다 펼 수 없어 무릎을 구부린다. 지혜는 방을 슬쩍 훑어보고는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다. 애들을 어디에 앉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들 집에는 종종 간다. 지혜는 “친구는 자기 방이 있으니 우리끼리 무슨 얘기를 해도 친구 가족들은 못 듣는다. 우리 집은…”이라고 했다.

집은 비좁았는데, 걱정은 많았다. 전기로 인한 안전사고 걱정이 가장 크다. 지혜는 “가끔 탄내가 난다”며 “그럴 땐 일단 집에 있는 모든 코드를 다 뽑고 나중에 다시 꽂는다”고 말했다. 전기가 나가 냉장고 속 음식들이 다 상한 적도 있다. 지혜는 “수리업자가 전선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는데 돈 때문에 그냥 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랑 ‘이 집은 언제 불타고 무너질지 모를 집’이라고 한 적이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혜네 집 건물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간다고 했다. 지혜 할아버지는 “무너지지 말라고 벽면에 벽돌을 덧대뒀는데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며 “안 쓰러질 거라 믿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나마 무더위는 낫다. 지혜 할아버지는 “장마 때는 집에 물이 새니까 더운 게 낫다”고 했다.

지혜는 “집에만 오면 무념무상이 된다. 되도록 잠만 자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춘기 학생이 좁고 불안한 집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긴 쉽지 않다. 지혜는 “집에 있으면 화가 난다”며 “그러면 밖으로 뛰쳐나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데,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좀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잠깐 집을 떠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입학 후 기숙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학기 만에 나왔다. 돈 문제가 컸다. 지혜는 국가장학금 때문에 인문계를 포기했다. 기숙사비도 면제였다. 하지만 아침저녁 밥값은 내야 했다. 월 20만∼30만원인 식대가 부담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지금도 어린 열여덟 살 지혜는 말했다. 시장에 따라가면 가장 싼 것부터 찾는다고 했다. 반에서 1∼2등을 할 정도의 성적이지만 대학에 안 가려 했다. 빨리 취업해 집에 보탬이 되고 싶단다. 가족 모두가 만류해 대학을 가기로 했지만 가능한 선택지는 학비부담이 적은 국립대, 취업이 용이한 학과다.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은 있느냐’고 묻자 지혜는 “살기 바빠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로 한 번도 못 간 가족여행을 꼽았다. 지혜는 “어디든 상관없으니 떠나고 싶다”며 “온갖 걱정이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또 “침대가 없어도, 넓지 않아도, 내 방이 아니어도 된다”며 “언니와 둘이 쓸 수 있는 방이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공동기획입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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