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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은 꿈, 창문 하나만 더 있어도…” 주거빈곤 위기의 아이들



경기도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민수(가명·18) 형제는 폭염이 시작되면서 무친 나물만 먹는다. 샌드위치 패널(특수 합판을 조립한 형태)을 올려 만든 가건물 안에서 찌개처럼 조리하는 음식을 하면 금세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민수는 요즘 해쓱해졌다.

이 집에는 거실 하나에 6.6㎡(2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이 있다. 그 방에서 민수는 형과 함께 지낸다. 민수는 집을 생각하면 ‘찜질방’이 떠오른다고 했다. 열대야가 있는 밤이면 열기가 식지 않아 잠을 이루기 어렵다. 형제가 생활하는 방에는 두 뼘 크기의 작은 창문이 있다. 민수는 “에어컨은 바라지 않는다. 창문이라도 조금 더 많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여름은 동현(가명·18)이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다섯 남매에 부모님까지 일곱 식구가 39.6㎡(12평) 집에 산다. 날도 더운데 사람은 많아서 좁다고 밀거나 사소한 것으로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가뜩이나 잠들기 어려운 무더운 여름밤에 누나를 제외한 남매 4명이 한 방에서 부대끼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동현이는 “그러면 안 되지만 가끔 친구 집에 가면 거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컨테이너박스에 네 식구가 살고 있는 현준(가명·13)이의 집은 여름 땡볕에 내부가 불덩이처럼 달궈진다. 해가 지기 전엔 집 안에서 10분도 있기 힘들다. 그래서 현준이는 밤이 돼서야 귀가한다.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계속 생기면서 아토피와 만성 중이염도 앓게 됐다. 그의 꿈은 평범한 집에서 지내는 것이다.

이들처럼 최저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이나 지하·옥탑방, 주택이 아닌 형태의 집에 사는 19세 이하 아동은 전체의 9.7%인 94만4104명에 달한다. 이들은 ‘아동주거빈곤’ 상태로 분류된다. 열악하지만 주택 형태를 갖춘 곳에 사는 아동이 85만7499명, 주택 외 거처에서 생활하는 아동이 8만6605명이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대면·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주거빈곤 상태의 아동 7명은 모두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들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집, 원룸, 컨테이너박스, 흙집, 가건물 등 불완전한 주거지에서 살고 있었다. 낡은 구조물에 다치기도 했고 감전 위험, 곰팡이 등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일반 가정 아이들과 비교해도 집에 대한 안정감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재단이 주거빈곤·일반 가구 아동 303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주거빈곤 가구 아동들이 일반 가구 아이들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방수가 잘 안 된다’는 비율은 약 2.5배 많았고 화재 위험에는 2배 더 노출됐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친구들과 비교하게 되거나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해 스트레스 지수도 높았다.

학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아동은 상대적으로 학업 성적이 낮았다. 특히 수학과 영어에서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각각 1.09점, 1.24점(10점 만점) 낮게 조사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에서 아동 주거빈곤을 조사해 온 고주애 책임연구원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처럼) 아동이 있는 가구의 최저주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거 취약계층 지원 사업 대상에 아동 주거빈곤 가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공동기획입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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