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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장 뒤쪽 벽엔 새까만 곰팡이가 가득

다섯 식구가 한 방에 살고 있는 성희(가명)네 집 한켠을 빨래건조대가 차지하고 있다. 좁은 주방엔 주방도구가 쌓여 있다.이병주 기자


샌드위치 패널을 이어 만든 주호(가명)네 집 앞에 겨울철 난로에 쓸 땔감이 놓여 있고, 빨랫줄에 수건 여러 장이 걸려 있다.최현규 기자


성희(가명·12·여)네 막내 얼굴에 서른다섯 바늘을 꿰맨 흉터가 있었다. 1년 전 낡은 세면대가 떨어지면서 다친 흔적이다. 일곱 살인 막내는 아직도 가끔 얼굴이 아프다고 한다. 몇 달 전 둘째도 세면대가 부러지면서 엉덩이를 다쳤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23일 찾은 성희네 집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다섯 식구가 한 방에 사는 성희는 “방이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희네 집은 26.4㎡(8평) 남짓한 원룸이다. 텔레비전, 옷걸이, 수납장, 각종 잡동사니와 빨래 건조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관할 공간이 없는 컴퓨터 본체와 주변기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삼 남매와 부모님은 남은 9.9㎡(3평) 공간에서 쪽잠을 잔다.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주방은 신발장과 구분이 없었다. 주방도구는 신발과 한데 뒤엉켜 있었다. 가로 80㎝가량 되는 좁은 싱크대에서 엄마는 다섯 식구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세면대가 깨져 대신 놓아 둔 양동이 여러 개도 눈에 띄었다. 한 달 전엔 보일러도 고장 났다.

수납장이 있는 벽 뒤편은 하얀 벽지가 새까맣게 뒤덮일 정도로 곰팡이가 가득했다. 곰팡이 때문에 아이들은 걸핏하면 감기에 걸렸다. 지난겨울에 예방접종을 했지만 삼 남매 모두 독감을 앓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성희는 아버지와 같은 방을 쓰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불편하고 아버지가 밤늦게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옆에 눕는 것도 싫다고 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집 안에 들어오지 않고 앞 공터에서 논다. 성희 어머니는 “이제 사춘기여서 자기 방도 갖고 예쁘게 꾸미고 싶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까 예민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높아져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성희 가족은 이곳에 오기 전 더 작은 원룸에 살았다. 그에 비하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거실과 여러 개의 방이 갖춰진 집으로 이사할 여력은 없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는 일을 쉬는 날이 잦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청소 일을 해 다섯 식구가 빠듯하게 생활했다.

샌드위치 패널(특수합판을 조립한 형태)로 지은 52.8㎡(16평) 남짓한 집에 살고 있는 주호(가명·11)는 감전 위험에 늘 불안해한다. 주호 할아버지가 직접 수도관을 집 뒷마당에 묻었는데 위에 시멘트를 올리지 못하고 비닐로만 덮어뒀다. 장마철에는 수도관에 물이 차면서 전기 차단기가 내려간다. 지난 18일 만난 주호는 “천둥 번개가 치면 감전될까봐 무조건 두꺼비집을 내린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빗물이 빠질 때까지 서너 시간은 물도 못 쓴다.

주호네는 거실과 주방이 있는 방 2개짜리 집이다. 큰방은 장롱, 빨래 건조대로 꽉 차서 사람이 쓸 수 없고 작은 방은 무릎이 불편한 할머니가 생활한다. 침대 하나 겨우 비집고 넣을 수 있는 공간이어서 방 문짝을 아예 뗐다. 주호는 방이 없어 할아버지와 함께 거실에서 생활한다.

주호는 좀 더 어릴 때는 할아버지에게 “내 방이 없다”고 투덜대곤 했다. 할머니는 “주호 친구들이 놀러 와서 (주호) 방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그냥 내 방을 아이 방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주호는 친구 집에서 하는 생일잔치에 초대받아도 가지 않는다. 할머니는 “초대에 응하면 자기 생일에도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해야 하니까 할머니가 힘들까봐 그런 것 같다”고 짐작했다.

27년 된 이 집은 한눈에도 한쪽으로 기울어 보였다. 10년 전 교체한 강판은 썩어가고 있었다. 장작을 때는 화목난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도 있다. 수도관으로 끌어다 쓰는 지하수는 식수용으로 안전한지 알 수 없다.

보안도 걱정거리다. 집 주위에는 울타리조차 없는데 가끔 누군가 마당에 들어와 쓰지도 않은 가스통을 가져가곤 했다. 식구는 별일이 없으면 오후 10시 전에 귀가한다. 최근 집 근처에 생긴 전봇대 2개는 할머니의 새로운 고민거리다. 인근 공장에서 사용할 전기를 끌어오면서 전봇대의 고압선이 주호네 집을 곧바로 지나쳐간다. 할머니는 “전봇대가 생긴 뒤로 비 오는 날엔 감전될까봐 마당에 안 나오게 됐다”고 했다.

좁은 집에 보관하지 못한 짐은 집 왼편에 마련한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했다. 경사진 비탈길에 시멘트 벽돌을 여러 장 쌓아 올린 컨테이너 박스는 위태로워 보였다. 석 달 전 지나가던 차가 박스를 치면서 비탈길 바로 밑에 있는 집 마당을 덮칠 뻔했다.

주호의 집은 지난 15년간 개보수를 해왔다. 기울어가는 집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도 어렵다. 할머니는 “이 집을 팔아도 빌라조차 얻기 어렵더라. 설사 간다고 해도 관리비를 낼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

흙집에서 살고 있는 현성(가명·16)이의 꿈은 실내건축 인테리어 기사다. 현성이 집은 제대로 된 집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흙을 쌓아올려 만든 집에서 사는 현성이는 남들처럼 평범한 집에 살고 싶었다. 현성이네 집은 창문도 ‘무늬’만 창문이다. 유리 대신 비닐을 씌워 모양만 갖췄다.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한 봄에는 비닐 사이로 뿌연 먼지가 들어온다. 흙으로 된 벽 곳곳에 전기 배선들이 밖으로 훤히 튀어나와 있었다. 이따금 전선에서 ‘팍팍’ 하는 스파크가 튀면 무조건 전기를 다 끈다고 했다. 30분, 1시간쯤 기다린 뒤 다시 불을 켜지만 진짜 안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집은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가 한 방을 쓰고 아버지가 나머지 한 방을 쓰면 주방 옆에 현성이가 겨우 몸 붙일 정도의 공간만 남는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집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현성이는 “집다운 집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며 “친구 집에 갔을 땐 부러운 마음을 혼자 속으로 삼킨다”고 했다. 당연히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도 없다고 했다. 현성이는 친구들이 집 근처로 오는 것조차 싫어서 항상 큰 길가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약속장소를 잡는다.

현성이는 “사람이 살 만한 집을 떠올리면서 이 공간에는 어떤 벽지가 어울리는지, 어떤 가구를 들여놓을지 상상해 본다”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웃으면서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상의 집을 설계해 보면 무척 재밌다”고 말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도 마음이 편치 않다. 현성이 아버지는 “사춘기가 되면서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국민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공동기획입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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