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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 더위에 손님 기대도 안해” 상인들 한숨

25일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한 상인이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재래시장에서는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종학 선임기자


낮 기온 37도… 손님 발길 뚝
배추·쪽파값 치솟았지만 팔지 못한 채소 시들어가
울며 겨자먹기 ‘떨이’ 처분… 일부 시장은 물뿌리개 장치
소비자들도 지치긴 마찬가지… “조금만 사고 빨리 돌아가요”


“요새 장사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손님 기다리는 상인은 없을 걸….”

서울 낮 기온이 37도까지 치솟았던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상인 김인순(58·여)씨는 더위에 지쳐 한숨부터 내쉬었다. 틀어 놓은 선풍기도 더운 바람을 내보냈다. 김씨는 “비교적 선선한 오전에나 (손님이) 잠깐 올 뿐”이라고 했다.

시장에는 농수산물 매장이 127곳이나 자리 잡고 있지만 정적만 가득했다. 호객행위를 할 만한 손님이 없어서다. 장 보는 사람은 5곳 중 1곳 정도였다.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시장 내부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연신 이마를 훔쳐야 할 만큼 더웠다. 상인들은 의자에 앉아 부채질만 해댔다.

상인들에게 더위만큼 힘든 건 팔지도 못하고 상해가는 채소를 버리는 일이다. 한 매장은 아예 시금치, 파 등을 가게 안쪽 냉장고에 넣어두고 박스에는 ‘싱싱한 시금치, 냉장고에 있습니다’라고 쓴 팻말을 씌워놓았다. 내놓은 오이는 벌써 누렇게 변했다.

다른 채소가게 상인 김춘식(66)씨도 “새벽에 가져온 쪽파는 벌써 맨 끝 부분이 노랗게 시들고 있다”며 “경제도 어려운데 날까지 더워서 손님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씨는 “구청에서 상가 임대료를 많이 받아가는 만큼 시장에도 더위를 견딜 수 있는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최근 채소 값이 크게 올랐지만 팔지 못한 게 많아 장사를 마칠 무렵이면 무더기 ‘떨이’가 이어졌다. 오후 6시쯤 서울 모래내시장의 한 채소가게 상인은 개당 1500원이던 파프리카를 2개 1000원에 팔았다. 그는 “오늘 아침에 내놓은 건데 더위 때문에 신선도가 금방 떨어지니까 싸게 팔 수밖에 없다”고 짜증을 냈다.

장을 보러 온 손님도 더위에 지치긴 마찬가지다. 오후 5시45분쯤 만난 유모(78·여)씨는 “마트가 시원하지만 시장이 싸니까 장보러 왔는데 폭염에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이제야 나왔다”고 말했다. 휴대용 선풍기를 한 손에 들고 장을 보던 인근 주민 오모(57·여)씨도 “이제 막 나왔는데 너무 더워서 필요한 것만 조금 사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채소 가격은 폭염으로 인해 껑충 올랐다. 상인들이 채소를 사 가는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는 작은 크기 배추 한 포기가 2000∼3000원에 팔린다. 지난달 하순에는 1500원선에 거래됐다. 모래내시장에서는 5000원 안팎이던 쪽파 한 단이 8000∼9000원까지 치솟았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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