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종합

진보를 ‘제도권’으로 이끈 주역 노회찬…촌철살인 무수한 어록

문희상 국회의장(위 왼쪽 사진 중앙),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위 오른쪽 사진), 여야 원내대표들이 23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윤성호 기자


고교시절부터 반유신 투쟁, 대학 들어가선 노동운동
특유의 입담·달변 큰 인기
삼성 백혈병·KTX 승무원 등 마지막 메시지도 ‘노동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으로 꼽힌다. 노동 운동가 출신으로 주요 진보 정당의 창당을 이끌며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학창 시절에는 직접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고, 노동 운동으로 구속 수감된 뒤에는 정당 활동에 집중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정의당 원내대표로 민주평화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등 진보 진영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 ‘국민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특유의 입담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 의원은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72년 상경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유신을 겪으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해 ‘유신독재 반대 박정희 타도’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고려대 재학 시절 용접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해 한동안 보일러 회사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자신의 학력을 속이며 노동 현장에 뛰어든 위장취업이었다. 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 때문에 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92년 만기 출소하며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진보 정당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꿨다고 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제도권 정치 진입에 성공했지만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이듬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노 의원이 2005년 국회에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도청 자료를 토대로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했는데, 대법원은 이 같은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2014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국회에 복귀했다.

노 의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무수한 어록을 남기며 ‘달변가’ ‘토론의 달인’ 등의 별명을 얻었다. 특히 복잡한 정치 문제를 서민의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해 진보 진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향해 이른바 ‘불판 갈이’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노 의원은 두 당을 향해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꺼메진다(새까맣게 된다). 판을 갈 때가 왔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지난 1월, 보수 야당이 적폐청산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자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라고 얘기하면 말이 되느냐”고 일축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의 특수활동비가 문제가 되자 “(특활비를) 직접 받아보니 영수증 처리 안하고 쓸 만큼 기밀 사항이 없다”며 특활비 폐지를 앞장서 주장하기도 했다.

평생을 노동 운동과 진보 정치를 위해 살아온 노 의원은 23일 남긴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노동자를 언급했다. 이날 오전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정의당은 노 의원이 사전에 서면으로 제출한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

노 의원은 이 발언을 통해 삼성전자의 백혈병 관련 조정 합의와 KTX 승무원의 복직을 언급하며 “누가 봐도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10여년이나 끌게 만들고, 상식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판 김성훈 기자 pa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