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 한국 작가가 세계에 보낸 도저한 문학 신호



“동무는 훌륭한 작가가 될 거요.” 치명적인 선언이었다. 감동적인 축복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작문 시간이었다. 조명희의 ‘낙동강’을 읽고 그 주인공 박성운을 이상적 자아의 모델로 승인하면서 감상문을 제출했던 터였다. 최선을 다한 글이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상찬 받으리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강철의 혁명전사”답지 못하다며 혹독하게 비판받지 않았던가. 그 자아비판회 사건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소년에게 치유의 빛이 깃드는 순간이었다. 작문 교사는 말했다. “이 작문은 작문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이것은 이미 유망한 신진 소설가의 ‘소설’”이라고. 소년의 문학의 뿌리를 웅숭깊게 읽어낸 그 선생님의 선언에 힘입어 소년의 문학의 뿌리는 더욱 깊게 뿌리내리면서 문학의 거목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전적 소설 ‘화두’에 나오는 삽화의 이런 안목, 이런 축복 그대로 소년은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를 빛낸 작가 최인훈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인훈 선생의 문학적 역정은 20세기와의 지난한 대결로 요약된다. ‘화두’에서 이렇게 되뇌었다. “우리는 20세기를 살았는가. 나는 20세기를 살았는가. 우리는 20세기에 동원되었다고 말해야 옳은가, 나는 20세기에 동원되었다고 해야 하는가.” 그는 격동의 20세기 작가였다. 일제 강점기에 현재의 북한 지역인 회령에서 태어나,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했던 북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 그러니까 일제 식민지, 해방 후 공산주의, 전쟁, 남한의 자본주의 체험을 두루 한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소설 작업을 펼친 작가였는데, 그렇다는 것은 20세기 북한 출신 한국 작가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독특한 문학의 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비평가 김우창이 최인훈 선생의 연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일컬어 ‘남북조시대의 예술가의 초상’이라 명명한 바 있거니와, 그의 문학은 대부분 분단시대의 소설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평판작인 ‘광장’을 비롯해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태풍’ 등 여러 작품에서 그는 분단된 남북조시대의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왜곡된 근대인의 삶을 심층적으로 조망해 보인다. 소설뿐만 아니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의 희곡, 에세이, 문학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선생 특유의 발상법과 스타일을 보였다.

1994년 발표한 장편 ‘화두’를 보면 최인훈 선생의 작가적 면모의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남북조 시대의 작가에서 미국과 러시아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체제 및 이데올로기와 전면적으로 대결하고, 20세기라는 역사적 시간 전체와 맞씨름하려는 관념적 상상적 수고를 보였다. 말하자면 분단시대 한국 작가가 세계에 보내는 도저한 문학 신호였다.

한국의 분단 상황과 세계 체제에 대한 관념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3의 길을 모색해 보려 했다는 점, 경험적 이야기 중심의 예전 소설 작법에서 벗어나 논리적·이성적 소설 작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했다는 점, 한국인의 근대적 삶의 가능성, 혹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모색하면서 문학적 실험을 도저하게 펼친 작가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최인훈 선생의 문학적 자리는 넉넉하다.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 현실과 환상, 현실과 신화 사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실험정신을 펼쳐 보였다. 관념의 구도 아래 경험의 핍진성을 다채롭게 채우려 했고, 그 관념의 플롯은 결국 지금, 여기의 현실을 서사적으로 설명하고 새롭게 풀어보려 한 고급한 시도였다.

‘회색인’에서 작가의 분신 격인 독고준은 강조했다. “너의 이름으로 서명하라.” 최인훈 선생은 오로지 자기 이름으로 서명할 수 있는 글만 쓰다가 가신 큰 작가였다. 그만큼 자기 문학에 대한 자부도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두’ 출간 직후 한 방송사에서 했던 대담 프로에서 선생이 보였던 당당한 자긍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너무나도 큰 문학 나무였던 최인훈 선생의 영전에 삼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제는 선생으로부터 나온 새로운 문학 나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선생의 문학을 이어나갈 차례다.

우찬제 문학비평가 ·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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