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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패닉’… 아이콘을 잃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투신해 숨진 23일 국회 의원회관의 노 의원 사무실 문에 추모의 뜻을 담은 국화가 붙어 있다. 문패 아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약속' 의원임을 나타내는 노란 마크에 적힌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노 의원 본인을 향하는 듯하다. 권현구 기자


사진=뉴시스


17대 총선 이후 대표주자 우뚝
노선투쟁에도 진보 가치 고수, 유권자와 눈맞춘 현실주의자 정의당 지지율 급상승 와중 극단적 선택… 진보 전반 충격
‘평화와 정의…’ 교섭단체 붕괴, 후반기 국회 변화 불가피할 듯


한국 진보정치의 기둥과 같았던 노회찬(62) 정의당 의원이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검은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황이었다. 정의당 등 진보 진영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노동운동으로 이름을 알린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진보 정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3선 의원인 그는 ‘운동’과 ‘투쟁’으로서의 진보를 ‘의회정치’를 통한 진보로 이끈 주역이었다.

노 의원은 심상정 의원과 함께 정의당의 단 둘뿐인 지역구 의원이다. ‘인물 경쟁’에서도 주류 정당 유력 인사들에게 밀리지 않는 진보 정치인이었다.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진보정치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노 의원은 또 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의 창당과 분당, 정의당 창당 등 진보계열 정당의 부침 속에서 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내에서 노선 투쟁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진보적 가치를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유권자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현실주의자였다.

최근 정의당은 상승세에 있었다. 지지율이 10%대까지 치솟으며 자유한국당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의당은 최근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도 밝힌 바 있다. 당이 국회에서 활짝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와중에 당의 구심점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셈이다. 특히나 그가 정치자금 문제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면서 진보 진영 전반에 주는 충격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의 별세로 ‘4당 체제’인 20대 후반기 국회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공동으로 구성한 교섭단체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의 의석수가 20석에서 19석으로 줄면서 교섭단체 지위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초대 원내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앞서 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38분쯤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경비원이 쓰러져 있는 노 의원을 발견해 신고했다. 경비원은 “퍽 소리가 나서 보니 사람이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엔 노 의원의 어머니와 남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경찰은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에서 노 의원의 외투를 발견했다. 옷에서 유서와 신분증이 든 지갑, 정의당 명함이 나왔다. 정의당이 공개한 유서에서 노 의원은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자필 유서가 맞다”고 밝혔다. 또 “유족이 원하지 않고 사망 경위에 의혹이 없어 부검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허익범 특검은 노 의원 사망 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단히 침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노 의원의 명복을 간곡히 빌고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임성수 최예슬 문동성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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