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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임대료



전해들은 이야기는 수도권 중소도시의 한 고깃집에 관한 것이었다. 한우를 파는데 문전성시일 만큼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점심에는 손님이 줄서서 기다렸고 저녁이면 예약손님이 테이블을 다 채웠다. 주변에 비슷한 고깃집이 여럿 있었지만 유독 그 집만 그랬다. 비결은 가격이었다. 같은 업종의 다른 식당보다 놀랄 만큼 싼값에 한우를 팔았다. 어느 날 이 집에 식품 당국 조사관이 방문했다. 경쟁업소에서 “가짜 한우를 파는 것 같다”고 신고한 터였다. 진짜 한우라면 도저히 그 가격에 팔 수 없다 해서 조사를 벌였는데 그 집 한우는 진짜였다. 그것도 아주 품질이 좋았다. 이런 한우를 어떻게 그리 싸게 파느냐는 조사관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건물이 제 겁니다.”

그는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었다. 매달 내는 상가 임대료는 자영업자에게 고정비용이 된다. 서비스 원가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담을 덜어내니 임차인 식당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몇 해 전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서 ‘프로젝트 141’이란 작은 커피점이 문을 닫았다. 커피 한 잔을 팔면 한 잔의 원두 값을 기부하며 ‘착한 커피’를 내세워 장사하던 곳이다. 그 골목엔 커피점이 30여 곳 있었다. 가격인하 출혈경쟁을 1년 남짓 견디면서 주인은 임대료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폐업 무렵 포털 지도 로드뷰로 이 거리의 옛 모습을 훑어봤더니 6개월마다 업데이트되는 사진 속 점포들이 계속 바뀌었더라고 했다. 변함없이 거리를 지킨 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건물주뿐이었다.

최근 서울 서촌 ‘궁중족발’ 사건은 임차상인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건물주는 임차인을 내보내고 리모델링을 해서 297만원이던 월 임대료를 1200만원으로 올리려 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런 상황의 상인을 최대 5년간만 보호한다. 보호 대상이 아니던 ‘궁중족발’ 주인은 건물주와 갈등을 빚다 둔기로 폭행해 구속됐다.

최저임금 후폭풍에 자영업자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후속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가 아니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국회엔 이미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24건이나 제출돼 있다. 혹시 건물주 재산권을 이유로 임대료 제한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본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을 읽어보길 권한다. 일본은 모든 점포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과 임차인 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해놨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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