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영리한 황여새와의 호흡

산나 카니스토 ‘황여새’, Pigment print, 2017 ⓒSanna KANNISTO, 한미사진미술관


영국 축구스타 베컴을 닮은 날렵한 머리 깃으로 유명한 황여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열매를 실컷 먹었기 때문일까? 가지 위에서 가만히 주위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 날개와 꼬리 끝에 노란색이 선명한 이 작은 새는 생물보호종의 하나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지구 북반부에 서식한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한반도 등을 찾는 황여새를 멋진 구도로 촬영한 작가는 핀란드의 산나 카니스토(1974∼)다. 카니스토는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줄어드는 동식물군에 관심을 갖고 이를 찍어왔다. 황여새를 찍은 것은 2014년부터로, 핀란드인들이 겨울은 남쪽에서 나고 봄이면 핀란드로 돌아오는 것과 닮아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다. 조류학자들과 함께 자연보호구역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흰색 플렉시글라스로 새를 위한 ‘무대’를 만든 뒤 주인공을 모셔(?) 촬영한 다음 그물망을 열어 풀어준다.

카니스토는 새를 촬영할 때 핵심은 ‘근접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 디테일을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하는 것은 물론, 촬영 시에는 한자리에서 차분히 새의 행동을 살피고 반응한다. 그는 “살아있는 새와의 작업은 무척 흥미진진하다. 내가 새를 바라보면 새도 나를 바라보는 걸 알 수 있다”며 황여새는 무척 지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은 상황을 만들어 찍는 연출사진이라는 장르와 순수미술의 오랜 전통인 정물화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디지털 카메라로 구현한 ‘21세기 정물화’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자연에의 숙고와 아름다움에의 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카니스토의 작품은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의 ‘한국-북유럽 사진교류전: Nature as a Playground’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기획전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한 한국과 북유럽 사진가 11명이 참여했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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