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위수령 검토 문건을 보고받고도 3개월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청와대 보고 시점 또한 불투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독립수사단 수사를 긴급 지시할 정도의 사안인데 그동안 국방부와 청와대가 침묵한 점도 미스터리다. 송 장관이 이 문건의 공론화 시점을 저울질하며 기무사 개혁의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문이 증폭되는 부분은 송 장관이 휘발성이 큰 문건을 즉각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단 문 대통령이 인도 방문 중 갑작스럽게 수사 지시를 내린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는 이 문건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을 개연성이 크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송 장관은 지난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이 수사 지시를 한 10일까지 청와대는 별도의 수사 지침을 내리지도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해 10월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건 당일의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 조작한 정황을 담은 파일 자료를 발견한 지 하루 만에 공개한 바 있다.
국방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다른 경로’로 문건을 보고했는데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다는 관측도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문건의 청와대 보고 시점에 대해 “칼로 두부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면이 있다”며 “사실관계에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인도 방문 중 이 문건을 처음 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무드 등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 장관이 최초 보고를 받은 날은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던 때다. 정부의 역량을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올인’하던 시기여서 문건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및 보고 시간이 늦춰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국방부의 느슨한 대응 역시 의문을 낳고 있다. 송 장관이 수사를 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청와대에 즉각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송 장관은 이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뒤 “(문건을) 놓고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무사 고위 관계자는 “이 사령관은 보고 후 ‘송 장관이 이번에 문건을 (곧바로) 오픈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송 장관이 기무사 개혁을 위한 카드로 쓰려고 공개 시점을 늦췄다는 해석도 있다. 송 장관이 개혁의 동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청와대 김 대변인도 “송 장관은 이 문제를 기무사 개혁이라는 큰 틀을 추진하며 함께 해결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또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문건을 공론화했을 경우 야권의 ‘기획설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우려했다는 취지다. 국방부 관계자는 “문건의 위법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린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독립수사단과 민간 검찰은 수사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이날 독립수사단 단장에 전익수(사진) 공군본부 법무실장(대령)이 임명됐다. 전 단장은 조만간 3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단을 꾸릴 예정이다. 특별수사단 활동시한은 다음 달 10일로 정했으며 미진할 경우 연장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국방부는 군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하급자의 정치적 지시 거부권 등을 규정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군인권센터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등을 내란예비음모 및 군사반란예비음모죄로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하고 기록 검토에 들어갔다. 군 부분 수사가 독립수사단 중심으로 진행되면 검찰은 민간인 신분인 예비역 수사를 맡을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김경택 조민영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