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양학선은 유리몸? 깨져도 나는 뛴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전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선수촌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있다. 양학선은 햄스트링 파열 등의 부상으로 다음 달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2020 도쿄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수원=권현구 기자
 
수원=권현구 기자
 


“저는 ‘육포’입니다. ‘도마의 신’이 아니라 이젠 육포가 됐어요.”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도마 금메달리스트 양학선(26)은 11일 경기 수원시 수원선수촌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먼 곳을 바라보며 “육포도 잘 찢어지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았다 싶으면 끊어지길 반복하는 오른쪽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을 붙들고 한숨짓던 어느 날, ‘육포’라는 낱말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고 했다.

“자조적인 별명이냐”고 묻자 양학선은 “안 좋은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스스로 붙인 것”이라고 답했다. 양학선은 지난달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고, 아직도 아침이면 병원을 향한다. 그는 “내 몸이 그저 육포 같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잘 관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중의 2초, 얼마나 긴지

양학선은 지난해 10월 캐나다의 몬트리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제47회 국제체조연맹(FIG)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 도마 예선 제2차 시기에서 햄스트링을 다쳤다. 그는 “발구름판의 마지막 한 발 때였다”고 말했다. 힘차게 달려 나가 발구름판을 박차는 순간 허벅지에서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매트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양학선은 “공중에서의 2초가 참 길다”고 말했다. 부상을 직감하고도 손을 짚고 날아오르면서, 양학선은 ‘어떻게 해서든 착지는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한다. 양팔을 몸통에 붙여 몸을 비틀기 시작할 땐 ‘비틀다 떨어지면 더 다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3바퀴째를 돌면서는 ‘이 악물고 딱 한번 떨어지자’고 마음을 먹었다.

전광판에는 선수들 가운데 유일한 15점대의 성적이 떠올랐다. 예선 1위였다. 양학선은 “손을 들어 심판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쳐다본 다리에는 큰 멍이 들어 있었다. 결선까진 단 1주일, 양학선은 의사에게 문의해 허용된 최대한의 소염제를 먹었다. 하루에 20알을 삼켰다. 다리가 얼얼하도록 얼음을 댔다. 원통하게도 염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결선을 포기했다. 2014년, 2015년에 이어 3번째로 찾아온 햄스트링 파열이었다. 양학선의 기권을 전하는 기사들에 ‘유리몸’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양학선은 “‘유리몸’임을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 선수는 결국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갖고 놀던 ‘양2’

양학선의 전매특허는 도마를 옆으로 짚고 도약해 3바퀴 반(1260도)을 회전하는 ‘양학선2(양2)’ 기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양학선은 인터뷰 내내 ‘양2’ 대신 ‘쓰카하라 트리플 반’이라는 용어로 그 기술을 설명했다. 양학선은 “아직 ‘양2’라는 기술은 없다. 국내 대회에서는 성공했지만, 기술명이 FIG에 공식 등재되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선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학선이 쓰카하라 트리플 반을 시도, 성공한 건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는 “갖고 놀 정도의 기술이다”고 했다. ‘양학선1(양1)’은 말할 것도 없다. 도마를 정면으로 짚은 뒤 공중에서 3바퀴(1080도)를 도는 ‘양1’은 그가 10대였던 2011년에 이미 완성됐다. 애초 3바퀴 반(1260도)으로 개발했지만 성공률을 위해 한껏 난이도를 낮춘 것이라 한다. 그런 ‘양1’으로도 양학선은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학선이 도마의 최고점을 계속 갈아치우자 FIG는 ‘양1’에 책정되는 난이도 점수를 계속 하향 조정했다. ‘양1’과 쓰카하라 트리플 반을 1차, 2차 시기에 함께 선보이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양학선을 지도하는 김성만 수원시청 감독은 “학선이 때문에 생긴 규정이고, 학선이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양학선이 오래도록 재활에 몰두했지만, 아직도 국제대회에서는 제대로 된 ‘양1’이나 쓰카하라 트리플 반을 보기 어렵다. 김 감독은 “지금 양학선은 80%의 실력만으로도 ‘양1’을 한다”고 말했다.

한때 두려웠던 도마

양학선의 일과는 병원 방문으로 시작된다. 서울의 병원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근육의 상태를 점검받는다. 오후엔 수원으로 돌아와 웨이트트레이닝, 유연성 훈련을 한다. 양학선은 “예전엔 형들이 힘들어 하면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나도 비가 오면 몸이 아파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다”며 웃는다.

‘도마의 신’은 어느 순간 도마가 두려웠다고 한다. 한때는 4∼5시간씩 뛰어도 괜찮던 도마였다. 하지만 부상 이후 아킬레스건과 햄스트링을 다친 기억이 생생할 때엔 도마를 향해 발을 떼지 못했다. 양학선은 “도마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그리지조차 못할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상의 순간을 잊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며 다시 떠올랐다”며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김 감독은 “부상 트라우마를 이기고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가 불렀다’는 등 무책임한 소문들이 있지만, 사실 양학선 만한 연습벌레는 없다. 양학선은 “집 근처에 좋은 언덕이 있다. 일방통행이라서 자동차가 오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북중 체육관에서의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양학선은 언덕으로 가 오르막 뛰기를 반복한다. 발구름판을 힘 있게 박찰 마지막 한 발을 위한 것이다.

양학선, 살아 있으니까

양학선은 지난달 1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기계체조 국가대표 최종(3차) 선발전에서 도마 종목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대표팀의 명단에 양학선의 이름은 없었다. 양학선은 “못 나갈 줄 알았다”고 했다. 햄스트링 부상의 여파가 남아 있던 1차 선발전과 2차 선발전에서는 1위를 하지 못했다.

양학선은 “그래도 마지막에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1차, 2차, 최종 선발전 사이의 간격이 조금만 컸더라도 학선이의 성적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양학선의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 지도자다. 그와 양학선의 시선은 2020 도쿄올림픽에 맞춰져 있다. 김 감독은 “올림픽 티켓을 딴 뒤에는 쓰카하라 트리플 반을 ‘양2’로 등재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판자촌과 비닐하우스를 떠나 아들이 지어준 ‘연못 있는 집’에 사는 양학선의 부모는 항상 아들이 안쓰럽고 미안하다. 양학선이 아시안게임 대표팀 탈락 소식을 전하자, 양학선의 어머니는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타일렀다. 금메달 딴 아들에게 그저 너구리 라면을 끓여 주겠다던 어머니였다. 농심은 여전히 라면을 보내 준다.

양학선은 “내가 보여주고 싶어 계속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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