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건드리기만 해도 발사되는 ‘일촉즉발’



이맘때, 전방의 한낮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웠습니다. 식전부터 조잘대던 새들과 밤새 주린 배를 새싹으로 채우던 고라니 같은 애들이 땡볕을 피해 숲에 숨어들어 꼼짝 않기 때문이지요. 해가 가고 밤이 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별별 짐승들이 부스럭, 바스락거리고 낑낑대기 때문인데….

한밤중, 철책 너머에서 시커먼 놈이 불쑥 머리를 드는 순간, 철모 속 짧은 머리카락이 빳빳 서서는 바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소총 방아쇠에 검지를 살짝 갖다 대는데, ‘일촉즉발’의 순간이지요. 아, 멧돼지.

일촉즉발(一觸卽發)은 건드리기만 해도 화살(총알)이 발사될 것같이 몹시 위급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觸은 뿔(角, 각) 같은 촉수로 더듬어 ‘느끼다’ ‘닿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觸覺(촉각) 接觸(접촉)처럼 쓰이지요. 發은 활(弓, 궁)을 쏘는 모양으로 시위에서 화살이 ‘떠나다’, 즉 ‘출발하다’의 뜻을 가졌습니다. 一觸은 ‘살짝 닿는’ 것이고, 卽發은 ‘즉시 (화살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무역전쟁’이 일촉즉발 상태에서 방아쇠가 당겨졌습니다. 국가 간 우열을 가리는 데 있어 전쟁은 ‘하수의 전략’이라고 ‘병법서’는 말합니다. 전쟁은 달리 방책이 없을 때 쓰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전쟁의 지경에 이르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기선을 제압해 실리를 챙기고 백성과 땅을 지키는 것이 ‘상수의 전략’이란 말이겠는데, 이게 병법에만 해당되는 교훈일까요.

서완식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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