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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날아간 ‘김치 프리미엄’… 가상화폐 투기 논란 그 후









한때 해외 시장보다 많게는 50%까지 가격 높게 형성
지금은 해킹·불확실성 등 악재 쌓이면서 ‘곤두박질’
가상화폐 가치 추락하는데 블록체인만 발전은 힘들어


‘김치 프리미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각종 신조어를 만들며 해외 시장보다 많게는 50%까지 높은 가격을 유지했던 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가상화폐 투기 논란이 정점을 찍었던 올해 초로부터 6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역(逆)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상화폐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해킹, 가격 변동성… 추락의 방아쇠

13일 찾은 가상화폐 투자자 커뮤니티에는 손해를 어떻게 하느냐며 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수두룩했다. 가상화폐가 ‘떡상’(가격 급상승)하던 시절에 장밋빛 전망에 기대어 대출까지 받아 투자를 했다가 원금마저 날렸다고 토로하는 투자자가 즐비했다. 한 투자자는 “5000만원을 대출받고, 적금까지 깨서 9000만원을 넣었는데 이제 ‘흙수저’도 못돼서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재미삼아 혹은 공부삼아 비트코인에 손을 댔다던 사람들도 손을 턴 지 오래다. 용돈을 모아 수백만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었다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매일 코인만 공부하고 시세만 들여다봤다”며 “(가격 폭락을 겪고) 올봄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거품’이 터진 배경에는 여러 악재가 버티고 있다. 정부 규제 강화 소식은 가상화폐 가격을 끌어내렸다.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해킹을 당하는 일도 연달아 발생했다. 코인레일은 지난달 해킹으로 350억∼400억원 규모의 피해를 봤다. 국내 1위 거래소인 빗썸도 지난달 19일 해커의 공격에 뚫렸다.

‘고질병’인 가격 변동성도 발목을 잡았다. 투자자의 기대감이나 시장 상황 등에 가격이 오르내리는 정도가 지나치다보니 투자심리가 식고 있다. 한국은행은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미국 달러화, 주식보다 10배 이상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올해 1분기 비트코인의 하루 평균 변동률은 4.7%로 달러화 변동률(0.3%)의 15.7배에 달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수익률의 표준편차를 연 단위로 환산하면 비트코인 변동성은 95.4에 이른다. 코스피지수 변동성(9.0)보다 10배 이상 높다.

‘가격 널뛰기’를 제어할 수단도 없다. 주식시장에선 가격 급등락 때 ‘서킷 브레이커(일시 매매거래 중단)’를 발동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에는 이런 보호망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송치호 연구원은 “정보가 공개되고, 투자자 보호장치가 많은 주식시장과 (가상화폐 시장은) 다르다”며 “투자자 관점에서는 매우 보수적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화 기능을 갖기 어렵다’는 진단도 가상화폐의 날개를 꺾는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말 발간한 연차보고서에서 가상화폐가 화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가상화폐의 탄생 이유이자 장점으로 꼽히는 ‘탈중앙화’ 개념이 문제의 발단이다. BIS는 분산 시스템이 신뢰를 갖추기 위해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중앙은행 등이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존 화폐와 달라서 가치의 안정성을 보장 받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혔다.

시장은 이달에 나올 ‘주요 20개국(G20) 가상화폐 규제 권고안’을 주목하고 있다. 오는 21∼22일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마련될 권고안에 따라 한국 정부도 구체적 입장을 내놓을 방침이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는 “권고안은 대체로 가상화폐 자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적절한 규제를 도입해 시장에 안정성을 도모하고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는 수준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가즈아’는 갔지만 블록체인은 남아

거품이 꺼진 가상화폐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은 ‘훨훨’ 날고 있다. 블록체인은 정보의 위·변조 방지를 위해 암호화 방식을 이용하는 정보 기록기술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구조라서 특정 주체가 데이터를 위조하거나 변경하기 어렵다. 때문에 보안이 뛰어난 기술로 평가받는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기업용 블록체인 세계시장의 규모가 2016년 25억 달러에서 2025년 199억 달러까지 성장한다고 전망한다. 삼성SDS 이지환 그룹장은 지난 4일 생명보험협회가 개최한 ‘보험, 미래를 향한 혁신 세미나’에서 “블록체인의 분산된 상호 인증, 확장성, 자동화 등의 요소를 활용해 시간, 비용, 위험 등을 감소시키려는 혁신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금융업계에서는 앞다퉈 블록체인을 활용한 상품이나 시스템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손해보험사인 악사(AXA)는 지난해 8월 항공지연보험 플랫폼 ‘피지(Fizzy)’를 개발했다. 피지는 보험 가입자가 탑승할 예정인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별도 청구절차 없이 사전에 합의된 보험금을 계약자에게 자동으로 지급하는 스마트보험이다. 보험계약 기록을 보관·유지하고 2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불하는 시스템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보험연구원 김규동 연구위원은 “국내 보험시장에 블록체인 적용이 활성화되면 보험금 청구 및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한 공동망 운영 등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보험사들도 ‘블록체인의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다만 아직 초보 수준이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12월부터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에 블록체인 기반 본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100만원 미만의 소액보험금의 경우 고객이 청구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지급하는 구조다.

은행권도 블록체인에 바탕을 둔 업무 시스템을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다음 달에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 있는 블록체인 인증서비스인 ‘뱅크사인’을 도입·운용할 계획이다. 뱅크사인은 블록체인의 특징인 참여자 간 합의와 분산저장을 통해 보안성을 높였다. 뱅크사인이 도입되면 수수료 없이 인증서를 발급받아 계좌를 조회하거나 돈을 이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 성장 없이 블록체인만 홀로 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블록체인에 참여한 이들에게 보상 개념으로 코인(가상화폐)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블록체인이 발전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오정근 교수는 “블록체인의 성격상 (네트워크를) 쌓으려면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며 “(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은) 말에게 한쪽 다리로만 달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혁명의 기반 기술로 생각해야 한다”며 “정부의 규제도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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