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그가 오늘 살아 있다면

최욱경, ‘무제’, 1965.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인생에서 가정(假定)은 소용없는 법이지만 화가 최욱경(1940∼1985)이 오늘 살아 있다면 한국 추상화단은 좀 더 풍성했을 듯싶다. 고요하고 차분한 ‘단색화’와는 또 다른, 강렬하고 자유로운 추상작업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마흔다섯 나이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최욱경은 작고 가녀린 체구와는 달리 커다란 화폭을 좋아했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캔버스에 강렬한 원색을 거침없이 입히며 화산처럼 폭발하는 추상화를 선보였다. 때문에 우리는 그를 ‘불꽃화가’ ‘색채화가’라 부른다. 고독했던 삶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색채와 붓질로 열정을 뿜어낸 것. 1965년 그린 이 작품 또한 녹색과 적색, 선과 면이 어우러지며 최욱경의 표현주의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욱경은 서울대 미대와 미국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미국 유학 초기 그는 윌렘 드 쿠닝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조형 양식을 찾고자 실험을 거듭했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고, 형태와 공간을 연구하며 고유한 세계를 일궜다. 컴바인 페인팅과 흑백 작업도 시도했다.

최욱경의 작품은 서울대학교미술관(관장 윤동천)이 기획한 ‘진동-한국과 미국사이’(∼9월 6일)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는 한국의 미술가 중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유학한 8명 작가의 작업을 통해 세계를 주도한 미국 문화의 영향에 우리 작가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다. 최욱경 외에 전성우, 임충섭, 노상균의 회화 조각 설치작품 등 65점이 나왔다. 마침 올해는 한국과 미국의 국가 간 첫 교류전이었던 ‘서울대미대-미네소타대학 교류전’이 열린 지 60주년 되는 해다. 이 교류전 후 우리 미술은 보다 넓은 시선을 갖게 됐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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