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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좌절·분노·슬픔·외로움이 글의 재료가 됐죠”

신작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낸 작가 최은영.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지나온 시간에 대해 내가 가진 감정을 많이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쇼코의 미소’(2016)로 유명한 작가 최은영(34)이 2년 만에 신작 중단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을 냈다. ‘쇼코의 미소’는 첫 소설집으로는 이례적으로 독자와 소설가, 평단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았다. 이 책은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 있다는 평단의 상찬을 받았고,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으며, 지금까지 10만부가 넘게 팔렸다.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가 순하지도 않고 맑지도 않은데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혹시 ‘내가 소설을 너무 예쁘게 쓰려고 애썼나’ 그런 생각을 곰곰이 했어요. 대개 깊고 어두운 소설을 좋은 작품이라고 하니까요.”

‘착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기뻐하지 않았던 것이다. ‘쇼코의 미소’는 표제작을 비롯해 세대 간의 유대를 그린 이야기가 많았다. 그럼 새 소설집엔 무엇을 담았을까. “무엇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쓴 건 아니에요. 그런데 묶어 놓고 보니 어린 시절의 막연한 슬픔이나 성장기의 좌절을 쓰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중단편 7편은 주로 10대와 20대 초반 인물들이 경험하는 우정과 사랑의 파열을 그린다. “과거 제 모습이기도 한데 그땐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했어요. 실제로 우린 서로를 다 알지 못하잖아요. 다 안다고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수록작 중 10대 소녀들의 상처를 담은 ‘고백’과 20대 청춘남녀 셋의 엇갈림을 그린 ‘모래로 지은 집’은 이런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성장기가 배경이기 때문에 자전적 요소가 상당히 많다. 어떤 경험이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됐는지 물었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한 강렬한 감정이요. 좌절, 분노, 슬픔, 외로움…. 당시엔 고통스러웠는데 글의 재료가 되더군요.” 주로 부정적인 감정이 이야기의 동력이 됐다고 했다. 실제 ‘601, 602’에는 오빠에게 맞는 옆집 친구를 보면서 느낀 분노와 좌절감이 담겨있다. ‘손길’은 삼촌 집에 맡겨진 어린이의 외로움과 슬픔에 대한 얘기다. ‘지나가는 밤’에는 외롭게 자란 자매의 소외감과 좌절감이 사무친다.

소설집 제목 ‘내게 무해한 사람’은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는 등장인물의 말에서 따왔다. 제목에 대해 그는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서로 해를 끼치며 사는 게 삶이죠. 하지만 가능한 한 해를 끼치지 않고 살려고 해요”라고 했다. 소설가로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가르치려 드는 글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것 같아요. 전 뭔가 확신하지 않고 나 자신을 의심하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야 ‘꼰대’처럼 손쉽게 조언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이런 자각은 대학 때 형성됐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교지 편집실에서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나는 항상 올바르다’는 착각을 한때 했던 거 같아요. 내가 옳다고 확신하면서 계속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싫어졌어요. 소설을 쓰면서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일까. 독자들은 그의 작품이 ‘나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주는 것 같다고 한다. 인기에 대한 그의 생각도 비슷했다.

“사람들이 왜 제 작품을 좋아하는지 잘은 모르겠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긴 해요. 언젠가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경험하게 해주니까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고등학교 때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으면서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년엔 ‘무해한’ 장편에 도전할 예정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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