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일 담론, 예능 프로그램으로 들어왔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 출연자들이 독일에서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 적힌 한국어 안내문을 보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1박2일’ 출연자들이 판문점에서 남북 대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방송화면 캡처


주름진 얼굴로 이순재가 ‘공산당’이라고 발음하자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tvN)에서 그는 독일 베를린 공항에 내려 캐리어를 끌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왔어. 내가 공산당이 아닌데 여기 일찍 올 수 없잖아?” 다행히 시간이 흘러 일찍 불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가능해졌다. ‘1박2일’(KBS)에서는 래퍼 데프콘이 판문점을 방문한 뒤 실향민인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생전 고향 땅을 밟아 볼 수 있길…” 하지만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일찍 불가능했던 일은 아직도 불가능했다.

꽃할배는 베를린 장벽으로, 1박2일은 판문점으로 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번갈아 휴전선을 넘나들며 악수한 뒤 다큐멘터리에나 어울릴 것 같던 ‘통일’이 버젓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넘어왔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꽃할배는 새 시즌을 기획하면서부터 통일 담론을 자연스레 넣기 위해 노력했다. 나영석 PD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 시기적으로 적절할 것 같아서 베를린에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방송에서 이서진은 베를린 여행 계획을 짜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릴 때 동·서독 (분단을) 배운 사람들이니까. 거기에 제일 포커스를 맞춰야 된다고 생각한 거죠. 한국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걸 봐야 해.” 그가 봐야 한다며 지목한 관광지는 ‘체크포인트 찰리’였다. 과거 동·서베를린의 길목을 지키던 검문소로, 우리나라로 치면 판문점 같은 곳이다.

1박2일도 지난 1일과 지난달 24일 2회분에 걸쳐 민간인통제선과 판문점 등을 여행하며 통일 이슈를 다뤘다. 인상적인 장면은 민통선 내 유일한 마을인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직접 만든 동영상에 북한 친구들과 축구하는 장면을 넣었다. 내레이션으로 남학생의 목소리가 깔렸다. “전교생이 30명뿐이라 아쉬워요. 친구들이 많으면 점심시간에도 재미있고 축구할 때도 좋잖아요. 그래서 전학생이 오기를 늘 기다려요.”

담담한 시선으로 북한 바로 앞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보여준 것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1박2일 멤버가 생활에 어려운 점을 물어보자 마을 이장은 “며칠 전만 해도 대남방송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힘들었다. 대화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옥상에서 보이는 북한 주민의 모습도 감동적인 포인트로 꼽혔다. 데프콘은 소달구지를 끌고 밭일 나가는 북한 주민을 보며 “(이렇게 가까운데) 저기가 북한이라는 게 안 믿긴다”고 외쳤다.

남북 관계를 다룬 콘텐츠는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다. E채널은 하반기에 ‘남북 공동 공부구역 JSA’(가제)를 방송한다. 우리나라와 북한 출신의 남녀가 모여 통일 관련 이슈를 즐겁고 가볍게 토론하는 콘셉트다. 영화계에서는 김지운 감독이 신작 ‘인랑’을 통해 반통일 테러단체가 등장한 2029년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선보인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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