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로 통화가치 폭락 등 신흥국 위기설이 심상찮다. 그나마 한국은 위안거리가 생겼다. 국제금융 위기 시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외환위기로 1997년 12월 18일 39억 달러로 추락한 이후 100배 넘게 불어났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4일 발표한 ‘2018년 6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003억 달러로 전월(3989억8000만 달러)보다 13억2000만 달러 증가했다. 지난 3월부터 넉 달째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39억 달러까지 추락했던 외환보유액은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힘입어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그 결과 2001년 9월 1000억 달러를 넘어선 뒤 2005년 2월 2000억 달러, 2011년 4월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로부터 7년2개월 만인 지난달 4000억 달러대에 진입하게 됐다.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것은 달러화 강세로 기타통화표시 자산에 대한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들었음에도 외화자산 운용 수익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국가신인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 긴급사태 발생 시 경제주체들이 해외차입을 못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막고 환율 급등에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97년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이 2007년 말 2600억 달러대에서 2005억 달러로 추락한 데서도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단기적인 대외지급능력을 나타내는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97년 286.1%에서 2008년 74%, 지난 3월 말 기준 30.4%로 크게 개선됐다. 주요국 보유액과 비교하면 5월 말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 일본, 스위스,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러시아, 홍콩, 인도에 이어 9위 수준이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