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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노석철] 중국은 여전히 미국이 두렵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 때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중국의 처지에선 불가피한 외교노선이었다. 91년 소련 해체로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적으로 견제를 받는다면 중국의 경제발전은 요원하다는 판단이었다. 당시에도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대국이었고, 중국은 가난하고 덩치만 큰 약골이었다. 덩샤오핑의 당시 ‘28자 방침’에는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말라(決不當頭)”는 문구도 있었다. 덩샤오핑은 97년 세상을 떠나기 전 “앞으로 50년 동안은 미국에 맞서지 말라”는 유훈도 남겼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이 성공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경제·외교·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굴기(堀起)를 시작했다. 급속한 부상에 미국 등 서방에서는 중국위협론이 비등했지만 중국은 더 이상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2012년 11월 집권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몽(中國夢)을 역설했다. 아편전쟁의 굴욕을 씻고 화려했던 청 제국 시대의 위상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한때 청나라는 전 세계 GDP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강력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9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2050년에는 세계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며 미국을 능가하는 군사대국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군복 차림으로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덩샤오핑 사망 20년 만에 도광양회 노선을 폐기하고, 미국에 맞서는 중국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출현은 덩샤오핑의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전방위로 거칠게 압박하면서 시 주석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셌다.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자 ZTE는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증시 하락, 위안화 급락, 수출 주문 감소 등 실물경기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미국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3%대 후반으로 완전고용 수준을 자랑한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분쟁을 거치면서 기술 격차를 절감하고 있다. 스스로 너무 자만했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중국 관영 과기일보의 편집장은 지난달 21일 과학기술 세미나에서 “중국의 과도한 자신감과 착각이 미·중 무역전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리는 아직 선진국과 큰 격차가 있다”며 이론 지식과 특허 기술, 장인정신 등에서 현저히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3일 사설에서 “최근 인터넷에 ‘미국이 두려워하고 있다’ ‘일본이 겁에 질렸다’ ‘유럽이 후회하고 있다’는 식의 글들이 많은 클릭 수로 돈을 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의 과학기술이 미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됐다’는 식으로 오도해 말꼬리를 잡히게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국력과 기술력을 과장하다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는 취지다.

이런 논조에선 그동안 국력 확대에만 집착해 온 중국 지도부의 반성도 엿보인다. 힘을 키울 때까지 최소한 미국에는 자세를 낮추자는 ‘신도광양회’ 지침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 주석 집권 후 중국은 외부에 힘을 과시하며 너무 나갔다. 중국은 스스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국뿐 아니라 주변국들은 중국의 패권주의 확장을 몸으로 느껴왔다. 지금 다시 발톱을 숨긴다고 야수의 본능까지 감추기는 어렵다. 미국은 오는 6일 340억 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중국도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국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점차 현실화될 조짐이다. 두 마리 고래싸움에 가까스로 평화의 싹을 틔운 한반도가 볼모로 잡힐까 걱정된다.

베이징=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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