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상봉 18년간 21차례 낙첨 “이젠 생의 끝자락인데…”







“그때(2000년)는 1년만 지나면 이산가족 전부가 북의 가족을 만나게 될 줄 알았어요. 이렇게 허망하게 18년이 지날 줄은 몰랐어요.”

2000년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희망해 온 황해남도 출신 김모(86) 할아버지는 올해 8월 20일부터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추첨에서 또 떨어졌다. 이번이 벌써 21번째 ‘낙첨’이다. 김 할아버지는 한국전이 발발한 1950년 부모와 형제를 북에 남겨 놓고 내려왔다. 그는 6일 “한번에 100명 정도만 상봉하면 그 많은 이산가족들이 언제 북의 가족을 만날 수 있겠느냐”며 “이산가족들도 다 늙었고, 이제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간간이 서신교환을 하고 있는 김씨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2000년 제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을 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에 쏠렸다. 당시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이 역사적인 첫 상봉을 이뤘지만, 당시 상봉 인원은 남북이 각각 30여명에 불과해 사실상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는 2000년에 시작됐다. 그해 8월 15일 나흘 일정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세기적인 리얼리티쇼였다.

상봉 행사는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매년 100명 안팎의 규모로 2∼3차례 열렸다. 사실상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상봉 행사가 정례화됐다. 하지만 2008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이산가족은 경색된 관계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09년과 2010년, 박근혜정부에서는 2014년과 2015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한 차례씩 열렸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4·27 판문점 선언’이 채택되면서 이산가족들은 상봉 정례화와 상봉 규모 및 기간 확대, 전면적 생사확인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열린 적십자회담 결과는 이산가족의 희망을 또 한 번 무너뜨렸다. 오는 8월 20일 북한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21차 상봉 행사의 규모가 남북 각각 100명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전면적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 등도 추후 과제로 넘겨졌다.

이산가족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상봉을 기다리기에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의하면 2003년에는 상봉 신청자 가운데 생존자(10만3320명)가 사망자(1만9488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지난 5월 말 기준 통계에서는 생존자(5만6890명)가 사망자(7만5234명)보다 2만명 가까이 적다. 이산가족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어 5월 한 달 사이 상봉 신청자 가운데 462명이 세상을 떠났다. 또 생존자 가운데 63.2%가 80세 이상 노인이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은 “다른 남북 간 협력 사업과 달리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엔 매년 4000여명씩 돌아가시기 때문에 상봉 행사는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상봉 정례화와 상봉 규모 및 기간 확대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북한 입장에서는 상봉 규모나 횟수 등을 확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 대북소식통은 “남한과의 접촉면이 넓어질수록 북한 지도부는 체제 동요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북한 내부에 체제 보존에 대한 자신감이 더 쌓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부족한 행정력과 비용 문제도 걸림돌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산가족을 찾으려면 통일전선부와 조직지도부, 인민보안성, 국가보위성 등이 총동원돼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이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행정 시스템이 여전히 수작업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상봉 규모가 늘어나면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산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상봉 정례화보다 전면적 생사확인이다. 김경재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북한을 어떻게든 설득해 생사부터 확인하는 것”이라며 “생사를 확인해야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연락을 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측 가족의 생사확인과 서신 교환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에 따르면 300만원 정도의 비용이면 생사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북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그들이 제3국에서 상봉할 경우 각각 300만원과 6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