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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자책골



1994년 7월 2일 새벽.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의 한 나이트클럽 주차장. 12발의 총성이 울렸다. 괴한들의 구둣발 아래엔 27세 청년이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져 있었다. 괴한들은 한 발 한 발마다 ‘골’을 외쳤다. 청년의 이름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살다리아가.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였다.

콜롬비아는 지역예선에서 무패 성적으로 94년 미국월드컵에 출전했다. 축구 황제 펠레는 콜롬비아의 우승을 예상했다. 조별예선 1차전에서 루마니아에 패하며 상황은 꼬여갔다. 6월 22일 미국과의 예선 2차전 전반 35분. 에스코바르는 미국 선수가 크로스한 볼을 차단하려했지만 다리를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콜롬비아는 1대 2로 패해 예선탈락했다.

콜롬비아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남미 마약 조직인 메데인카르텔은 살해 협박까지 했다. 선수들은 귀국을 주저했고,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했다. 에스코바르는 홀로 귀국했다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골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자책골로 각인됐다. 이때부터 언론들은 자살골 대신 자책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자책골은 실수든 뭐든 자기 골문에 볼을 넣는 행위를 말한다. 영어로 ‘OG(Own Goal)’로 표기한다. 월드컵 1호 자책골은 3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스위스의 로에르체르가 기록했다. 이번 월드컵 이전까지 41골이 나왔다. 이번 대회에선 예선에서만 9골이 나와 98년 프랑스월드컵 6골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의 경우 86년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 조광래에 이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박주영이 기록했다.

축구 선수들에게 자책골은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이다. 상대의 슈팅이 자신의 몸에 맞거나 문전으로 날아오는 볼을 차내려다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의 경우 일부러 자기 골대에 볼을 넣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멕시코전 패배 이후 장현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평창올림픽 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김보람이 댓글에 시달리다 병원에 입원해 심리 치료까지 받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은 인격 살인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에 관대하다. 달라져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부터 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길 바란다.

김영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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