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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과 글루건까지 휴대하는 여성들, 화장실 몰카와의 전쟁



송곳과 글루건(실리콘 접착제)은 취업준비생인 이은주(가명·27·여)씨의 외출 소지품이다. 공중화장실은 기피하고 있지만 그래도 급할 땐 화장실 문과 벽을 우선 확인한 뒤 이용하는 게 습관이 됐다. 송곳과 글루건은 이때 사용된다. 의심스러운 구멍이 있으면 송곳으로 찔러보고 글루건으로 메운다.

몰카(몰래카메라) 공포가 그녀를 집어삼킨 건 지난 4월부터다. 외국에서 공부하다 귀국한 이씨는 온라인에서 우연찮게 화장실 몰카 영상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씨는 “몰카 범죄가 늘고 있다는 건 뉴스로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영상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한 줄은 몰랐다”며 “화장실 문이나 벽에 생긴 구멍에 렌즈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아 몰카 대처법을 찾아봤다”고 했다. 지난 3개월간 그녀는 글루건 3통을 사용했다고 한다.

‘몰카포비아(몰카공포증)’로 고통받는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 ‘몰카 찾는 법’ ‘몰카 구멍 막는 법’ 등을 올려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화장실 몰카 피해 사례가 잇따르지만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흡해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구멍에 휴지를 넣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일상이 됐다는 여성들의 토로도 많다.

창업을 준비 중인 박지은(가명·27·여)씨는 외부 화장실을 이용할 때 칸막이벽에 구멍이 보이면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쓴다든지 하는 방법은 이미 널리 퍼져 있다”며 “혹시라도 몰카 피해자가 됐을 때 경찰 수사를 대비해 증거라도 남겨놓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실제 몰카 범죄는 나날이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몰카 범죄는 6465건으로 2013년(4823건)보다 34% 증가했다. 피해 유형별로 화장실 몰카는 통상 ‘기타’로 분류되는데 전체 통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몰카 기술이 발전해 화장실에 설치하기 쉬운 위장형 몰카는 육안으로 찾기 힘들 정도로 크기가 작아졌다. 화장실 몰카는 한 번 설치하면 영상 데이터 등을 무선으로 내려받을 수 있어 따로 수거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몰카 근절에 나섰지만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행정안전부는 50억원을 들여 몰카 탐지 장비를 구입하고 공중화장실 5만곳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몰카는 공중화장실보다 민간 시설에 더 많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며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 약 2년간 몰카 탐지 사업을 해 왔지만 몰카 적발 건수가 0건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안규영 박상은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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