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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인간의 죽음 앞에는 사랑만 남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운구하고 있다. 관 위에는 하얀 꽃이 놓여 있다. 장례지도사가 쓴 신간 ‘이 별에서의 이별’은 사람들의 마지막에 대한 연민과 성찰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픽사베이




‘유족과 장례 절차를 상담하고 장례용품 준비부터 시신 관리, 장례식 주관 등 장례에 관한 절차를 관리한다.’ 한국직업사전은 저자의 직업인 장례지도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간 ‘이 별에서의 이별’을 쓴 양수진(35·여)씨는 장례지도사로 일한다. 우리가 흔히 장의사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10년 넘게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책은 그 기록이다. 살다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양씨는 서문에서 “초라하고 무심한 듯 보여도 가만가만 만져보면 그곳에 당신과 나의 인생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곳’은 장례식장을 가리킨다.

어떤 죽음엔 애통함이 있다. 약혼자의 방문을 기다리던 30대 초반의 여성은 기다림에 지쳐 목숨을 끊는다. 장례지도사는 이 여성의 목에 남은 멍 자국을 화장품으로 꾹꾹 눌러 가린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처참함도 있다. 혼자 살다 숨진 뒤 뒤늦게 발견된 50대 남성. 안치실에 함께 간 선배가 저자에게 말한다. “조심해. 구더기가 쏟아질 수 있어.” 양씨가 머리 쪽 비닐 자락을 조금 풀었다. 살은 시커멓게 녹아내리고 눈 코 입이 있던 자리는 깊이 패어 있었다. 그 구멍 사이로 수백수천 마리 구더기가 꿈틀댄다.

저자는 장례식장에서 목격한 인간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사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지 결정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나와 이별할지 알 수도 없다. 책에는 신혼여행을 갔다가 해변에 아내를 둔 채 바닷속으로 사라진 새신랑 얘기도 나온다. ‘그 신부는 어떻게 살까.’ 책을 읽으며 떠나는 누군가와 남겨진 누군가를 계속 상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민낯이 드러난다. 허세 많고 욕심 많은 상주는 남이 볼 화환은 크고 화려한 걸로 주문하면서 음식은 싸고 적게 내놓으라고 채근한다. 한 남편은 장례지도사에게 죽은 아내의 입에서 금니를 빼달라고 한다. 6개라고 알려주면서.

그는 한때 우울의 수렁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지난해 어머니 장례를 정성껏 치러주셔서 감사했다. 첫 기일을 준비하려는데 도와주실 수 있냐”는 한 유족의 문자를 받곤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자신이 했던 장례 일이 다른 사람들의 이별을 도와주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집가려면 그 일 그만두라”는 편견 어린 말에 한동안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마음을 돌리게 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암 투병을 하다 숨진 40대 여성의 입관을 돕게 됐다. 남편으로 보이는 50대 남성과 아들 같은 남자아이가 손을 잡고 안치실로 들어왔다. 수의를 다 입힌 저자는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의 이마에 짧게 키스하며 말했다. “정말 사랑했습니다”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자는 왠지 모르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긴 이별의 문턱 앞이지만 한 남자의 진심 어린 고백을 받은 그녀가 심지어 행복해 보였단다. 저자는 이 장면에서 “마침내 죽음 앞에 무엇이 남는가? 결국 사람이다. 사랑이다”라고 얘기한다.

읽다가 몇 번이나 책날개의 저자 프로필을 확인했다. 많이 잡아도 이제 30대 중반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전문 작가처럼 쓸까.

저자는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원래 책 읽기와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그렇게 읽힌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에피소드를 묶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흡입력이 있다. 장례식장의 살풍경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다.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이들이 귀하게 간직할 수상록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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