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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중인데 하드 삭제?… 증거인멸 의심 받는 사법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대법원이 이번엔 ‘증거인멸’ 논란에 휩싸였다. 대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퇴임 후 복구가 불가능하게 삭제한 ‘디가우징’ 작업이 통상적 절차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관련 조사가 사실상 진행되고 있었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의혹의 정점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27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된 과정과 관련해 “관련 규정과 통상의 업무처리 절차상 대법관 이상의 경우 퇴임 시 하드디스크를 폐기처분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을 향한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된 날은 지난해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9월 22일)한 뒤 한 달여가 지난 10월 31일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새로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추가조사를 요구하고 국정감사 등에서 행정처 현장조사 주장이 제기되던 시기다. 사법부 내부에서 의혹에 연루된 컴퓨터를 보존해야 한다는 촉구도 있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통상적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일단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된 경위를 파악한다는 입장이다. 증거인멸 혐의를 수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랐다는 대법원 설명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당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증거인멸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디가우징이 통상적이고 규정에 따른 절차라는 점을 반복해 언론에 설명했다. 또 “해당 대법원장실과 대법관실에서 퇴임 시에 처리를 지시해 조치되는 것이다. 행정처 내 폐기 여부 결정에 대한 별도 결재선은 없다”며 현 대법원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작업이 진행된 시점은 지금과 같은 재판거래 의혹 등이 나오기 전이므로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에서 보면 합리적 의심처럼 보이지만 그 시점으로 돌아가면 양 전 대법원장 컴퓨터까지는 핵심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잘 따져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민영 이가현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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