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④ 최진욱의 한강변 풍경 3부작


 
최진욱 작가가 개인전 ‘아파트 뒤편’전이 열린 서울 종로구 효자로 인디프레스 갤러리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편으로 보이는 게 한강변 풍경을 그린 연작이다. 최종학 선임기자
 
‘알바 천국’(왼쪽)과 ‘이것이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인디프레스 갤러리 제공


서울 한강변은 시대의 표정을 담는다. '고수부지'로 불리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곳엔 서민들의 삼겹살 굽는 소리가 부자 되고 싶은 욕망처럼 지글거렸다. 시민공원이 된 지금은 수상 스포츠족이 날리는 시원한 물보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듯 부푼 기분을 선사한다.

서울 종로구 효자로 인디프레스 갤러리에서 24일 끝난 최진욱(62) 작가(추계예술대 교수)의 개인전 ‘아파트 뒤편’에 선보인 한강변 3부작 풍경도 일견 경쾌하다. 나란히 세운 캔버스에 담긴 아이 손잡고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 반려견을 산책시키러 혼자 나온 아가씨, 손놀림이 가벼운 환경미화원 아저씨 등의 소재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이내 뭔지 모를 불안, 혹은 심상치 않은 낌새가 감지된다. 정면이 아니라 뒷모습으로 담아낸 모자(母子)를 보자. 아이는 강에서 뭔가 흥미로운 걸 발견한 듯 엄마 손을 끄는데, 그 엄마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은 어둡고 깊다. 햇빛을 반사하는 물빛이 일렁이는 걸 보면 분명 낮일 텐데,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검다. 문득 ‘아빠 엄마 나’식의 삼각구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풍경 속 ‘남성의 부재감’이 감각된다. 그리하여 아빠가 없는 이유에 대한 상상이 가지를 뻗는다.

작가 특유의 덜 그린 듯한, 덜 마른 듯한 캔버스 표면이 그런 ‘낯설게 하기’ 효과를 낸다. 대충 그은 듯 빠른 붓질, 불협화음을 내는 보색의 조합, 그리고 덜 칠한 듯한 넓은 색면이 불안감을 조장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런 생각에 연거푸 맞장구쳐주며 말했다.

“맞아요. 벽을 다 칠하면 안정감이 들지만, 덜 칠하면 불안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풍경화가들이 산이나 강을 그릴 때 유토피아처럼 대하곤 하죠. 저는 그 반대예요. 편안하고 행복한 풍경이구나, 하는 느낌이 안 나도록 애씁니다.”

‘초록색을 잘 쓰는 작가’라는 별칭이 붙은 그답게 초록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주황 보라 오렌지 핑크 등 튀는 색들이 캔버스에 듬성듬성 배치돼 있다.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가 구사한 색면이 리듬감을 주기 위한 거라면 최진욱의 보색의 색면은 불안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 감정을 교란하는 색”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환경미화원이 입은 옷의 하늘색과 쓰레기봉투의 주황색의 대비 같은 것들이다. 경계표지처럼 튀는 색 탓에 환경미화원의 손놀림에서 역설적으로 한국사회 청소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떠올려질 수 있겠다. 또 개를 끌고 혼자 산책 나온 여성을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의 도시는 젊은 여성에게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강남역 살인사건’ ‘몰카 편파수사 항의 대학로 시위’ 등이 오버랩 될 수 있다. 이렇듯 고도의 계산된 서투름 덕분에 우리는 익숙해서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의 이면을 환기하게 된다.

최진욱은 ‘회화 작가’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그가 처음 시작한 주제는 ‘작업실’이다. 19세기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이 신화나 성서가 아닌 당대의 비참한 현실까지 담아내겠다며 리얼리즘 선언을 한 것이라면, 최진욱의 작업실 연작은 일종의 회화 선언이다. 어지러운 화구, 거울, 그 거울 속에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 캔버스를 쪼개기도 하고 쌓기도 하며 설치미술처럼 사용하는 등 ‘별짓’을 다했다. 이를 두고 작가 겸 평론가 박찬경은 “마치 기호로 표시하듯 자신의 그림이 ‘회화에 대한 회화’임을 강조한다”고 평했다.

작업실 연작을 통해 ‘회화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던 작가는 1991년 첫 개인전 이후 “가슴 벅찬 세상의 리얼리티”를 찾아 작업실을 박차고 나왔다. 첫 소재는 작업실이 있던 서울 홍제동의 풍경이다. 온통 회색의 덜 개발된 도시, 하굣길 아이들조차 회색 톤으로 묘사해 도시의 회색 풍경 속에 녹아든 가운데 풀과 나무만 녹색으로 툭툭 그렸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삭막하게 다가오는 서울 주변부의 풍경을 담았다.

그는 점점 이 사회의 리얼리티를 찾아갔다. ‘녹색 피’가 흐르는 탈영병을 그렸고, 비정규직 KTX 여승무원들의 삭발 투쟁, ‘알바 천국’으로 대변되는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그렸다.

이번 전시 제목은 원래 ‘남쪽으로부터’라고 붙였었다. 한강변 3부작 풍경도 정확한 제목은 ‘남쪽으로부터’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걷는 남쪽 사회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양극화와 성 불평등 같은, 대한민국의 평균적 욕망의 상징인 아파트 뒤편의 모습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 세계를 ‘감성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근대 회화를 연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 이후 서양화는 표현주의, 추상회화 등으로 뻗어나갔지만 리얼리즘만 과거에서 멈췄다며 이를 개척해 가겠다고 했다.

한때는 혁명 같았던 소재들이었지만, 이제는 진부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못 그리는 그의 회화세계가 소재가 가진 이면의 진실을 ‘촉각적으로’ 감각할 때까지 낯설게 하기를 지속하는 ‘감각의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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