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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준동] 경우의 수



“실력이 같은 두 도박 참가자가 게임을 하다가 그 게임이 갑자기 중단됐을 때 돈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나요?” 도박사인 슈발리에 드 메레는 1654년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유명한 블레즈 파스칼에게 이렇게 물었다. 도박 현장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판돈 분배에 대한 질의였다. 파스칼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피에르 페르마와 이 문제를 놓고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판돈 분배는 남아 있는 게임 수와 이기는 데 필요한 게임 수에 의해 결정된다.’ 확률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도박 판돈 계산이 확률의 시초가 된 것이다.

도박에서 시작된 확률은 여러 곳에서 통용된다. 월드컵축구대회 단골 이슈인 ‘경우의 수’도 마찬가지다. 확률과 통계를 통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가짓수를 구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축구는 경우의 수를 많이 따져야 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이 속한 F조만큼 난해한 조는 없다. 같은 조에 편성된 4개 나라의 운명은 27일 오후 11시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갈린다. 2승을 거둔 멕시코가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랐으나 2패로 최하위에 처진 한국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만큼 경우의 수가 복잡하다.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F조에서 3개 팀이 1, 2위를 다툴 경우, 3개 팀이 2위를 다툴 경우 등의 경우의 수를 상세히 설명했다.

한국은 4강 신화를 만들어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16강 진출을 확정짓지 못했다. 1승1무로 조 선두였지만 최종전이 우승 후보 포르투갈과의 경기여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했다. 우려와 불안이 교차했지만 한국은 박지성의 결승골로 1대 0으로 승리하며 당당히 16강에 올랐다. 도박사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거라던 결과가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16년이 흘러 열리는 월드컵에서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 최종전을 앞두고 있다. 최근 다섯 차례 월드컵에서 승점 3점으로 16강에 오른 경우는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 통계적으로 4.3% 정도 된다. 미국의 한 통계분석업체는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을 1% 미만으로 예측했다. 이번에도 경우의 수를 따지자 ‘착즙의 나라’(즙을 짜듯 희망을 짜낸다는 뜻)라는 누리꾼의 자조도 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어떤 기적이 연출될지 아무도 모른다. 축구공은 둥글다.

김준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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