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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되풀이… 국민은 희망고문, 감독은 희생양

한국 축구 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25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굳은 표정으로 훈련을 소화 중인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AP


“월드컵이 국민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돼야 하는데, 4년마다 국민들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를 치르고 있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작심 발언을 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조별리그 2연패에 빠졌다. 현재로선 3연패로 대회를 마칠 가능성이 높다. 3차전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16강 진출을 위해 한국전에서 총력전을 벌일 태세다.

한국 팬들은 또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도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지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최악의 성적(1무 2패)에 그치며 탈락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겠다”며 “기술위원회를 대폭 개편하고 대표팀 운영 체계에 대한 쇄신책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4년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감독 교체에 따른 혼란과 정보 부족, 아쉬운 전술 운용 등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현재와 당시 상황이 오버랩된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룬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자 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하지만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은 조 감독은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뒤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긴 홍명보 전 감독에게 눈길을 돌렸다.

브라질월드컵 개막을 겨우 1년 남짓 남긴 시점에 대표팀을 맡은 홍 감독은 본선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선수를 중용하는 이른바 ‘엔트의리’ 논란을 일으켰다. 또 상대팀에 대한 정보 부족과 전술 부재로 질타를 받았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후임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 ‘실리 축구’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독선적인 대표팀 운영으로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고전했고, 결국 지난해 6월 해임됐다. 축구협회는 이번엔 신 감독에게 눈길을 돌렸다.

지난해 7월 한국 사령탑에 오른 신 감독은 선수로서 월드컵 본선에서 뛴 경험이 없으며, 감독으로도 이번이 첫 월드컵 무대다. 신 감독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2017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끌며 각각 8강과 16강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다. 엄격한 리더십과 변화무쌍한 용병술을 자랑하는 신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에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했다. ‘트릭’까지 동원했지만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실망스러운 전술과 용병술로 경기 내용과 결과를 모두 놓쳤다. 멕시코전에선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승점을 챙기진 못했다.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과 경기력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져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신 감독에게만 한국 축구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지워야 할까.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 전문가는 “이번에도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감독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워 물러나게 해선 안 된다.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모든 축구인들이 책임을 진 다음 원점에서 다음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 한국의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1998 프랑스월드컵 때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 2연패 후 감독이 경질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3차전 상대인 벨기에를 맞아 놀라운 투혼을 발휘해 1대 1 무승부를 거둔 바 있다. ‘신태용호’의 태극전사들도 독일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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