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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경애하는, 보통사람의 마음 담고 싶었다”

신작 ‘경애의 마음’을 낸 김금희 작가는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나도 주인공 경애처럼 타인에 대해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창비 제공




한 사람이 어떤 비극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금희(39) 작가의 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은 여기에 소용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으로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은 김 작가의 첫 장편이다. 그를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이 소설 앞자리에 놓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자란 인천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고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그 호프집은 내가 자주 쏘다니던 동인천역 주변에 있었다. 사고 후 그곳을 삼가게 됐는데, 언젠가 그 사건이 안겨준 비애감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 사건 위에 켜켜이 쌓였던 마음의 결과물이다. 화재 당시 호프집 주인이 “돈 내고 가라”며 출입문을 잠그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그 상처만 쓰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 사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됐고 마흔이 됐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 비극에서 빠져나왔는지, 그 과정을 담고 싶었다.”

이야기는 호프집 화재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이 사고로 친구를 잃은 상수가 직장 동료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경애와 상수는 둘 다 회사라는 현실에서 보면 부적응자다. 경애는 뚱한 인상에 시위하기 좋아하는 불순 세력이고 상수는 낙하산 주제에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줄기차게 한다.”

김 작가가 소개한 두 인물이다. 두 사람은 직장 ‘반도미싱’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회사원이다. 소설은 두 사람을 보듬고 싶어질 정도로 그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비호감인 사람에 대해 나쁘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 ‘나쁨’에도 어떤 농담(濃淡)이 있다. 이 농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이해에 가닿을 수 있다.”

연인과 헤어진 뒤 무기력에 빠진 경애는 페이스북 연애상담 페이지에 편지를 쓰며 위로를 받는다. 상수는 늦은 밤까지 연애상담 페이지의 열렬한 상담자로 활동하며 낮에 회사에서 받는 오욕을 씻어내는 이중생활을 한다. 김 작가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처음에 제목부터 확 떠올랐던 소설이다. ‘경애(敬愛)의 마음’. 타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도의 세계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마음을 소설에 담고 싶었다.”

김 작가의 표정은 시종일관 온화하면서도 진지했다. 그는 몇 년간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도 이런 마음이 모여서 일어난 것이라고 여겼다.

“2016년 촛불 집회 때 우리는 촛불을 하나씩 들고나갔고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올해는 남북관계가 적대에서 동반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소수가 이룬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느 한 결의 마음을 믿어서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아끼는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이게 삶을 지키는 공동체의 힘인 것 같다.”

경애와 상수는 결국 두 사람이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됐던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인을 향한 평범하면서도 우연한 관심이 인생의 비극에서 우리를 건져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경애’에 대한 헌사 같기도 하다. 연민과 공감을 원료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한참 따뜻하게 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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