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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경제인사이드] 기업들은 “일 돌아갈까” 끙끙, 근로자는 “일 늘어날까” 불안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는 이달부터 한 달에 한 번 주 4일 근무하는 ‘인풋 홀리데이’를 시범 도입했다. 유급 휴가 외에 하루를 휴일로 추가해 주 4일 근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015년 이 회사 신입사원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하다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회사가 마련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일환이다.

과로사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 ‘가로시’(かろうし)를 영어발음대로 적은 ‘karoshi’가 옥스퍼드 사전 등에 등재될 정도로 장시간 근로가 문제가 됐던 일본에서도 주 4일 도입 기업이 늘고 있다. 유니클로는 하루 10시간씩 주 4일을 일하는 제도를 도입했고, 야후 재팬과 일본 IBM은 하루 8시간씩 주 4일을 일하는 근무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를 도입한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주 4일 근무가 더 보편화돼 있다. 한국은 2004년 주 5일 시행 이후 14년 만에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을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피해와 혼선을 우려하고 있지만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을 가진 한국 입장에선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생활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발달,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라도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주 5일 도입 14년 지나도 연간 2000시간 넘게 근무

한국은 2004년 주 5일제 도입과 동시에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에 주 40시간 적용이 완료된 것이 2011년이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 주 40시간을 법제화한 프랑스(1936년) 독일(1967년) 일본(1987년)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시차가 크다. 더욱이 제도 도입 이후에도 행정해석을 통해 일주일을 5일로 해석하며 토·일 휴일근로가 가능하게 길을 열어줬다. 이로 인해 최대 68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 동안 일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주 40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영향 등으로 주 40시간을 도입하고도 여전히 장시간 근로국가의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제도 도입 전인 2003년 한국은 멕시코(2277시간)를 제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연간 근로시간 1위(2424시간)였다가 2016년에는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2위(2069시간)로 한 계단 내려왔다. OECD 가입을 추진 중인 코스타리카(2212시간)를 포함하면 3위다. 멕시코가 같은 기간 근로시간이 거의 줄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한국은 355시간이나 근로시간을 줄여 제도 도입 효과를 어느 정도 본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독일(1363시간) 덴마크(1410시간) 프랑스(1472시간)는 물론이고 OECD 연간 평균 근로시간(1763시간)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내걸었던 연간 근로시간 2000시간 이내 축소 목표도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근로시간 단축 앞두고 유연근무 실험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기존에 일하던 관성을 유지하면서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 유연근무제를 시범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은 크게 세 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먼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주 혹은 3개월 이내의 단위 기간을 정해 해당 기간 평균 노동시간이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특정 일 혹은 특정 주가 법정 기준시간을 초과해도 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최대 단위 기간은 취업 규칙 변경 시 2주 이내고, 노사 서면합의 시에는 3개월 이내다. 단 2주 이내의 경우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48시간을 넘을 수 없고 3개월 이내엔 하루 12시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는 제조업체 등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단위 기간 평균 근로시간이 기준 근로시간을 넘지 않으면 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동일하다. 차이점은 단위 기간이 1개월 이내이고, 직원이 직접 근무 시간을 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또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달리 근로기준법에 별다른 제한 시간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시차 출퇴근제 등이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해당한다. 보통 사무직을 대상으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량근로제는 일하는 방식과 시간을 노사 간의 서면합의로 정해 직원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신상품 또는 신기술 개발이나 연구 업무, 신문·방송 또는 출판사업에서 기사의 취재, 편성 업무 등으로 도입 가능 업무가 정해져 있다. 신제품 개발 부서나 방송국 PD 등 근로시간을 일일이 체크하기 힘든 전문직에 주로 도입한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서나 사업장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다른 만큼 각 제도를 나눠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업무에 따라 세 제도를 모두 도입할 계획이다.

일선 현장, 제도 시행 후 혼란 우려 여전

기업 현장에선 근로시간 단축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제도 시행 후 혼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실험을 할 수 있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계도기간을 6개월로 늘려 달라고 요구했고, 당·정·청이 이를 수용하면서 다소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한 해석 차이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근로 형태가 보다 유연해져야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시행일이 다가올수록 커지고 있다. 경영계는 정부가 법 시행 직전까지 탄력적(최대 3개월)·선택적(최대 1개월)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요구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불만이 높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부칙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 이후에도 개인별 업무량이 줄지 않으면 제도 시행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등에서는 유연근무제를 시범 도입한 회사에서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휴게시간을 추가로 입력해 전체 근로시간을 낮추는 사례가 올라오고 있다. 52시간을 다 쓰고도 일 처리를 못한 경우 근무를 했음에도 휴게시간을 입력해 남은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휴게시간이 너무 없을 경우 인사팀 등에서 일괄적으로 휴게시간을 넣으라고 눈치를 주는 사례도 올라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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