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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숲이 열린 날



숲이 열렸다. 지난 1년간 인간의 발길을 허락지 않은 금단의 숲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1468년 이곳을 자신의 능이 들어설 능림(陵林)으로 정하면서 조성된 광릉숲이다. 광릉숲은 평소에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다 일년에 딱 한 차례 이틀 동안 일반에게 공개된다. 예약하면 관람 가능한 광릉수목원과는 같은 듯 다른 곳이다.

올해로 13번째를 맞은 광릉숲축제가 지난 16∼17일 열렸다. 숲길은 일년에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삽시간에 가득 찼다. 숲은 파란 하늘을 가린 거목들로 울울창창했고, 탐방객들은 “공기부터 다르다”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떤 이는 숲속 작은 음악회를 감상하면서, 또 어떤 이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삶의 고단함을 털어낸다. 여기저기서 “일년에 한 번만 보고 느끼는 게 아쉽다”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광릉숲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겠다.

축제는 떠들썩해야 제맛이다. 숲이 고요한 치유 마당이라면 숲 입구 광장은 왁자지껄한 잔치 마당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탐방객 또한 고소한 부침개 냄새의 유혹을 쉽사리 떨치지 못한다. 먹거리 장터를 위해 총출동한 듯 보이는 마을사람들은 밀려드는 손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탐방객들은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 즐겁고, 지역주민들은 짭짤한 부수입을 얻어 즐거운 상생의 축제한마당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 정치인이 빠지면 오히려 이상한 일. 이 지역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장이 차례로 등장해 ‘내가 이 행사를 위해 얼마나 애썼다느니’ 공치사를 늘어놓으며 축제의 흥을 깬다. 몰려드는 인파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주차공간도 감점 요인이다. 차도 곳곳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차를 대는 그 신공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불편함이 개선된다면 광릉숲축제는 주최 측이 밝힌 대로 ‘각박한 삶에 지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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