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길, 오늘 평화의 첫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싱가포르 이스타나궁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왼쪽 사진). AP뉴시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하루 앞선 지난 10일 이스타나궁을 방문해 기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다(오른쪽).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일 김 위원장이 중국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사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AP뉴시스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마침내 싱가포르에서 만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9일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면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공식화됐다(위 왼쪽 사진). 지난달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적대감을 이유로 회담을 전격 취소하는 위기도 있었다(위 오른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 위원장과 두 번째로 만나 비핵화 의지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확인했다(아래 왼쪽). 당시 문 대통령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AP신화뉴시스


훗날 역사는 2018년 오늘을 남북 분단 73년 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날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래서 분단 체제가 종식되는 날 한국민들은 이날을 역사로 만든 두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날을 계기로 한반도는 분단의 시대를 청산하는 역사의 물꼬를 트게 됐다고. 비록 그 이후 숱한 후퇴와 좌초 위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6·12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를 평화와 공동 번영의 시대로 이끄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남단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역사적인 회담을 시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통역만 대동한 채 일대일 회담을 갖는다. 이어 확대회담을 가진 뒤 실무오찬을 갖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이 끝난 뒤 오후 4시(한국시간 오후 5시) 기자회견을 하고 오후 8시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밝혀 회담 연장 가능성은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트위터에 “싱가포르에 오게 돼 아주 좋다”며 “흥분이 감돌고 있다!”고 썼다. 그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대통령궁 이스타나에서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도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가질 것”이라며 “일이 매우 잘 풀릴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북한도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조선중앙통신은 “조·미 수뇌회담에서는 달라진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이 교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전날 밤 예정에 없이 전용차로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을 벗어나 싱가포르 시내 관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등과 함께 싱가포르 명물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등 시내 명소들을 둘러봤다고 현지 매체 더스트레이츠타임스가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과 40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한국 국민은 마음을 다해 기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종전선언 문제도 언급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그 자체가 드라마이고 역사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후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얼굴을 맞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리며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 북한을 상대로 선제타격을 검토했었다. 그런 만큼 싱가포르 담판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어떤 역사를 쓸지는 아직 모른다.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이행 합의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예상되지만 북·미 양측은 회담 전날까지도 합의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양측 실무협상팀은 싱가포르에서 막판 절충을 벌였다. 양측이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한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키기 어려운 핵 폐기(CVID)’라는 표현을 합의문에 담을지 여부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CVID만이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회담 성과물”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다만 “정상회담에서 향후 대화의 프레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해 후속 협상을 예고했다.

협상장 주변에서는 두 정상의 결단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서 역사적인 이날 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배석자 없이 만나는 두 사람의 일대일 담판에 모아지고 있다.

싱가포르=전석운 특파원, 강준구 기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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