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트럼프 ‘세 갈래 길’… ①최상: 통 큰 양보 ‘윈윈’ ②최악: 협상 결렬 ‘빈손’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대좌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양측이 서로 원하는 것을 통 크게 주고받고 합의문에 ‘사인’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면, 반대편엔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 회담’으로 끝나는 최악의 상황이 존재한다. 현재로선 북·미가 양 극단의 중간지점에서 서로 밑지지 않는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지도자여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회담 성패는 오전에 열릴 단독회담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북핵 전문가들이 보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미 나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해석의 여지가 없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목표에 합의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것이다. 두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시한을 못 박고 향후 실무협상의 지침이 될 원칙과 방향을 정하면 합격점이다. 이후 북한은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선제조치를 취하고,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및 대북 제재 해제 같은 안전보장 조치를 밟는 수순이다. 북·미 간 신뢰 관계가 형성돼 후속 정상회담이 몇 차례 이어지면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1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작업은 양측이 서로 해야 할 일들의 시한을 정하는 것”이라며 “시한을 못 정할 거라면 싱가포르까지 요란하게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CVID에 합의하는 것부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북·미는 이날 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물러설 수 없는 선을 분명히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진두지휘해 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싱가포르 현지 브리핑에서 CVID 원칙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적대관계 해소의 전제조건으로 자주권 인정을 요구했다. 비핵화에 앞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큰 틀의 포괄적 합의를 이루고 후속회담 일정을 정하면서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하는 것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라는 관측이 나온다. 단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라 해도 4·27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 표현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이 원하는 수준에 근접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CVID라는 자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건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을 똑같은 의미로 규정하는 데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북·미 간 또는 북핵 6자회담 틀에서 비핵화 합의가 있었지만 폐기 대상과 방법, 절차에 관한 해석이 달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물꼬를 잘 트더라도 향후 로드맵 협상은 산 넘어 산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로드맵 협상은 정상회담 합의보다 수십배 더 어렵다”며 “수백 가지 디테일에 합의해도 한 가지가 이행 안 되면 모든 게 다 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감이 있지만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통상 정상회담은 밑에서 만들어놓은 합의문에 도장을 찍는 행사로 여겨지지만 이번엔 정상 간 담판으로 풀어야 할 쟁점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났는데도 비핵화에 대한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확대회담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아예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워싱턴 정가의 ‘부실 회담’ 비난을 감수해가며 회담을 밀어붙인 트럼프 대통령이나 관영매체를 통해 싱가포르행을 대대적으로 알린 김 위원장이 짊어질 부담은 엄청나다. 북·미가 회담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비난전을 벌일 수도 있다. 지난해처럼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으로 돌아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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