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소 요새 포신에 핀 꽃… ‘평화 염원’ 센토사섬 르포

싱가포르 센토사섬 관광명소인 실로소 요새의 대포 포신에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꽃이 꽂혀 있다. 실로소 요새는 1800년대 후반 싱가포르를 점령 중이던 영국군이 섬을 드나드는 선박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10일 오전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싱가포르 센토사섬은 겉보기에는 평화로웠다. 여느 주말처럼 아침부터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자동차를 타고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섬 전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로 곳곳에 경찰차가 배치됐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취재진의 차량들도 바삐 움직였다.

이날 자동차를 이용해 싱가포르 본토에서 센토사섬에 진입할 때 어떠한 통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싱가포르 주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섬을 드나들면서 휴일을 즐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센토사섬엔 고급 리조트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수족관, 아름다운 해변 등 휴양 및 오락거리가 몰려 있어 주말에 관광객들을 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경계는 삼엄했다. 도로와 호텔 등 시설 입구에서 보안검색이 강화됐고, 센토사섬을 둘러싼 바다 위에서도 끊임없이 헬리콥터가 정찰 중이었다. 보안 당국은 특히 해상을 통한 테러 가능성에도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주말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센토사섬에 놀러왔다는 싱가포르 주민 케빈 림(42)씨는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연다는 것은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라면서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안전을 위한 경계는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장으로 확정된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은 직원과 경찰들이 차량 진입로를 지키고 서서 일반 관광객과 택시, 자가용 등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입구에 서 있던 호텔 직원은 “모든 객실의 예약이 끝났다. 오늘 호텔에 들어갈 수는 없다”면서 진입을 막았다. 현지 매체의 취재 차량과 경찰 차량만 검문 후 진입이 허가됐다.

센토사섬의 관광명소 실로소 요새의 대포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맞아 마치 포신에 꽃이 핀 것처럼 장식돼 있었다. 섬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실로소 요새는 면적이 4만㎡에 달한다. 1800년대 후반 싱가포르를 점령 중이던 영국군이 센토사섬을 드나드는 선박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지하터널과 탄약고, 17세기에 사용되던 대포들이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군의 포로수용소로 사용됐다. 식민통치와 전쟁을 상징하던 이곳의 대포가 꽃으로 장식된 모습을 관광객들은 흥미롭게 관람했다. 요새에서 만난 관리 담당자는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기를 염원한다는 뜻에서 이번 회담 기간 동안만 특별히 꽃으로 장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센토사섬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시내도 경비가 점차 삼엄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두 정상의 숙소가 위치한 중심가인 오차드 로드 등에서 보안 검색이 강화되면서 이날 교통의 흐름이 느려졌다. 택시 기사 임수홍(58)씨는 “두 정상이 도착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도심 곳곳이 통제돼 같은 거리라도 평소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가짜 김정은’으로 유명세를 탄 홍콩 연예인 하워드 X는 8일 싱가포르에 입국하면서 창이 국제공항에 억류돼 경찰과 출입국 당국의 조사를 2시간가량 받기도 했다. 경찰은 하워드 X에게 “민감한 시기인 만큼 센토사섬과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 등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글·사진 임세정 기자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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