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CVID' 명기 문제 놓고 막판 진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뉴욕 맨해튼의 코린티안 콘도미니엄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일행에게 창밖의 마천루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미 국무부 제공


폼페이오 또 CVID 언급… “김정은 결단 내려야”
북한은 용어 자체에 거부감…트럼프 행정부, 회담 직전까지 北에 당근 제시하며 압박할 듯
비핵화 합의 순조로우면 IAEA 사찰·검증도 재개


미국과 북한이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첫 정상회담 합의문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명기하는 문제를 놓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비핵화의 원칙에 관한 큰 틀의 논의와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세부 협상을 병행하고 있는데, 핵심 사안에서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시점에 다시 CVID를 언급한 것은 이런 입장차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의 나라를 위해 CVID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입에서 CVID가 나온 건 지난달 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뉴욕 회동’ 이후 일주일 만이다.

북한은 CVID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수립된 이 개념을 대북 공격의 상징이자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굴욕적인 처사로 여기고 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CVID가 없는 정상회담 합의문으로는 미 의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CVID 합의를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로 꼽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8일 “북·미 간 실무협상이 싱가포르에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서로 간에 입장이 팽팽하다는 의미”라며 “양 정상이 만나기 직전까지 실무선에서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남은 과제는 정상이 만나서 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합의문에 CVID가 포함될지, 비핵화 시한이 들어갈지, 핵탄두·ICBM 반출이 명기될지는 회담 당일 가봐야 안다”고 했다. 판문점에서 6차례 실무협상을 벌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싱가포르에서 의제 조율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역대 어느 회담보다도 정상 간 담판의 여지가 커 회담 당일 극적 합의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개한 김 위원장의 친서에 “놀라운 일을 도출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상회담까지 남은 기간 북한에 각종 체제 안전 보장책을 제시하며 CVID 관철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비핵화 합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핵 시설 등 사찰·검증도 재개될 전망이다. IAEA는 2009년 4월 사찰단이 북한에서 추방된 이후 복귀 대비 훈련을 계속해 왔다. 검증은 비핵화의 핵심이면서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이다. 북한은 1992년 1월 처음 IAEA와 핵 안전조치 협정을 맺은 뒤 90g의 플루토늄과 7개의 핵 시설을 신고했다. IAEA는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과 핵시설을 은닉한 의혹이 있다며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이에 북한은 협정 파기를 선언한 적이 있다. 북핵 6자회담 결과물인 2005년 9·19 공동성명이 깨진 것도 검증 대상과 방법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첫 정상회담에선 사찰·검증 재개 시점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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