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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생을 마친 ‘명품백 대명사’…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사망

2004년 5월 당시 케이트 스페이드의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때 미국 여성들에게 그의 이름이 붙은 핸드백은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어른’이 됐다는 표시였다. 그를 상징하는 스페이드 장식이 붙은 물건이라면 옷과 각종 액세서리뿐 아니라 가정용품과 그릇, 수건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90년대 급부상한 미국의 현대 여성 디자이너 1세대 케이트 스페이드(사진)가 5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페이드의 시신이 5일 뉴욕 맨해튼 파크애비뉴의 자택 침실에서 가사도우미에게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현장에서 13세 딸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돼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건축 노동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TV방송국 PD를 꿈꿨지만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뉴욕에서 여성지 ‘마드모아젤’의 패션 에디터가 됐다. 에디터를 하며 익힌 안목을 바탕으로 93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다. 당시 연인이자 이듬해 남편이 된 앤디가 함께했다.

‘케이트 스페이드’ 가방은 귀여우면서도 품격 있는 디자인에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90년대 여성 사회초년생들에게 특히나 사랑받았다. NYT는 “스페이드의 가방은 (유럽에서 만든) 펜디나 샤넬 가방보다 접하기 쉽고 보다 미국적이었다”면서 “스페이드는 토리 버치나 제나 라이온스 같은 후대 여성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들이 나아갈 길을 개척했다”고 평했다.

스페이드 부부는 99년 케이트 스페이드의 지분 56%를 3400만 달러에 백화점업체 니만 마커스에 매각하고 남은 지분도 2006년 5900만 달러에 넘겼다. 지난해 5월 패션그룹 태피스트리가 24억 달러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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