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손흥민, 평가전서 왜 ‘13번’ 달았을까

한국 축구대표팀 기성용(왼쪽)과 손흥민(가운데)이 지난 1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에서 각각 임시번호인 24번과 13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 이승우(오른쪽)는 지난달 28일 온두라스전에서 9번을 달았다.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기성용은 등번호 16번, 손흥민은 7번, 이승우는 10번을 달고 뛴다. 뉴시스


태극전사 23명 등번호 배정
한국 선수들, 유럽 등에선 낯설어
약체 분류된 한국 대표팀의 전력 본선 전 노출 막으려 위장번호 사용


1번부터 23번까지 배정되는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등번호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에게 배정된 7번은 통상 측면 공격수(윙어)가 받는다. 포르투갈을 이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상징인 번호다. 이승우가 받은 10번은 팀 에이스에게 주어지는 번호라 화제가 됐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브라질의 네이마르 등이 10번을 달고 있다.

이처럼 등번호는 선수의 스타일과 포지션을 가늠하는 요소 중 하나다. 상대팀 선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을 때 각 대표팀 전력 분석관들이 참고하기도 한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앞서 온두라스·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평소 쓰던 번호와 다른 번호를 달고 뛰었다. 7번을 주로 달던 손흥민은 미드필더 정우영이 쓰던 13번을 사용했다. 정우영은 대신 25번을 썼다. 16번이었던 기성용도 24번을 썼다.

‘위장 등번호’로 불리는 임시 등번호 부착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친숙한 전략이다. 월드컵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강팀은 모든 소속 선수들이 이미 심층 분석돼 있다. 한국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유럽 등에선 낯설게 느껴진다. 등번호는 경기력과는 무관하지만 작은 정보의 차이가 변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약체로 분류되는 한국이 써볼 수 있는 전략이다.

앞서 2010 남아공월드컵 때 허정무호도 최종 엔트리 확정 전 평가전에서 위장 등번호를 썼다. 2010년 5월 24일 일본전(2대 0 승), 5월 30일 벨라루스전(0대 1 패)에서였다. 벨라루스전에서는 7번 박지성이 19번을 다는 등 전원이 위장 등번호를 사용했다. 벨라루스전을 관전한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을 의식한 조치였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큰 도움은 안 돼도 해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에게 얼마나 혼란을 줬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한국은 개막 후 첫 경기인 그리스전에서 2대 0으로 승리했다. 이 승리는 원정 첫 16강의 발판이 됐다. 당시 대표팀은 평가전에서 쓸 위장용 유니폼을 여러 벌 준비했다.

하지만 위장 등번호만으로 부진한 경기력을 만회하긴 어렵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2014년 6월 10일 최종 평가전인 가나전에서 위장 등번호를 달았다. 러시아와의 본선 첫 경기 8일 전이었다. 10번이었던 박주영이 12번을 달았다. 가나전에 러시아, 벨기에 등 본선 상대팀 전력분석관이 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가나에 졸전 끝에 0대 4로 참패했다. 국내에서는 “노출될 전력도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월드컵 출전국이었던 가나는 원래 등번호를 달고 나왔다.

일본 스포츠 매체들은 “한국이 가짜 번호를 달고도 졌다”고 혹평했다. 본선 상대인 러시아의 스포츠 매체 스포르트는 당시 “모두들 한국 선수들이 누가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한국이 뭔가 숨기는 것 같다”고 의구심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한국은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1대 1로 비겼고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7일 볼리비아와 평가전을 갖는 한국 대표팀도 본선까지 전력 노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11일 비공개로 진행되는 마지막 평가전인 세네갈전에 모든 전술·전략을 맞춰볼 계획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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