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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판사들 “성역 없는 수사 촉구”… 사법부 ‘격동의 하루’

한 법원 직원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의 법원 문양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후속 조치를 두고 서울중앙지법,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릴레이 판사 회의가 열렸다. 최현규 기자


서울중앙지법·대구·인천 등 대법원장엔 ‘엄정 중립’ 요구
고위 법관도 회의 개최 예고… 사법부 내 의견 차이 확대 조짐


전국 판사들이 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옛 행정처 책임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속속 내놨다. 법원마다 정식 표결 절차를 거친 공식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검찰의 수사 착수 가능성이 높아졌다.

판사들의 릴레이 회의 결과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고발 내지 수사의뢰를 결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면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고위 법관들도 판사회의 개최를 예고하며 사법부 내 의견 차이도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부터 직급별 판사회의를 연이어 열었다. 단독판사들이 가장 먼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의결했다. 이어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법원장이 고발이나 수사의뢰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간 접수된 고발장을 근거로 검찰이 충분히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회의에선 김 대법원장이 고발의 주체가 되면 ‘셀프 고발’에 이은 ‘셀프 재판’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이 나서는 것 자체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에서 진행되는 법원의 영장 재판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법원 차원의 공식적인 고발이나 수사의뢰 없이는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들도 회의를 열고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의결했다. 이들은 “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라”는 요구사항도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배석판사들도 성역 없는 수사와 원문 공개를 촉구했다. 인천지법·대구지법 단독판사들도 회의를 열고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의결했다. 5일 열리는 수원지법 전체 판사회의 등에서도 수사 촉구 목소리가 나올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도 회의를 열었지만 재적 인원 113명 중 과반(의사 정족수)이 참석하지 않아 5일 다시 모이기로 했다. 검찰 수사 촉구 등 사태 수습 방안을 놓고 내부 인식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들도 5일 오후 4시 판사회의를 열기로 했다. 차관급 고위 법관인 고법 부장판사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조율하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수사 촉구보다 사태 수습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을 제외한 서울고법 소속 판사들은 이날 회의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의결했지만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서울의 한 법관은 “지법 부장판사나 고법 판사 이상 법관 중에는 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법관들과 비교했을 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게 사실”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퇴근길에 “의견을 가감 없이 들은 뒤 입장을 정하겠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KTX 해고 승무원,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회 등 사법농단·재판거래 피해자들과 함께 5일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구자창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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