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미국의 금리 상승과 달러화 강세가 일부 신흥국 금융 불안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음 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와중에 나온 발언으로, 2013년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 당시와 같은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 총재는 4일 한은이 주최한 2018년 BOK 국제콘퍼런스 개회사에서 “2013년 테이퍼 탠트럼 당시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신호가 신흥국에서의 급격한 자본유출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앞으로 선진국들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급격한 자본이동과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테이퍼 탠트럼은 큰 대회를 앞두고 운동선수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운동량을 줄일 때 안절부절못하고 발작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는데 이 같은 상태를 일컫는 의학용어다. 2013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언급한 뒤로는 이른바 미국이 ‘양적완화’를 서서히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만으로도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식 및 채권이 급락한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국제금융시장의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연준은 오는 12∼13일(미국시간)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간으론 14일 새벽 결과가 나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이날 연방기금(FF) 금리선물시장에서 6월 기준금리 25bp(1bp=0.01% 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91.3%로 반영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1.50%이고 미국은 연 1.50∼1.75%이다. 다음 주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한·미 금리 격차는 50bp로 더 확대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5년 8월부터 2년간 한·미 기준금리 역전기 당시 25∼50bp 구간에선 외국인 투자자금이 월평균 9000억원 유출됐으나, 금리차가 100bp 확대된 3개월간은 외국인 투자자금이 월 2조7000억원 빠져나갔고 주가도 8.6%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아르헨티나 페소화와 터키 리라화는 두 자릿수 넘게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아시아권에선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외국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한 달 새 두 번이나 기준금리를 50bp 올려야 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