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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핏빛 언어전쟁… “불어만” “영어도” 유혈충돌 3년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벌어진 ‘바벨탑 전쟁’의 불길이 수년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건국 이래 유지된 프랑스어와 영어 사용자들의 동거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시간) 최신호에서 카메룬의 북서부 2개 주(州)와 중앙정부 사이에 분쟁이 한창이라고 보도했다. 영어 사용 지역주민들이 차별에 들고일어나자 정부가 무력진압하면서 사태가 내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발단은 2016년 말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 지역 교육자들과 변호사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 법률 조항이 프랑스어로만 돼 있어 영어 사용자들이 상대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이유였다.

평화시위는 얼마 가지 않아 극단적인 폭력사태로 번졌다. 6번째 임기를 보내며 장기집권 중인 폴 비야(85) 대통령이 이 지역의 인터넷 사용을 차단하고 무력진압을 지시하면서였다. 진압대와 시위대를 가리지 않고 최소 100명 넘게 살상이 이어졌다. 정부 측 사망자는 이 중 40명을 넘는다.

피터 헨리 발레린 주카메룬 미국대사는 “정부가 살상과 방화, 약탈을 승인했다”면서 “4월에 유혈사태의 양상이 가장 심했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거의 내전에 가까운 지경으로 사태가 번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많은 주민이 국경을 건너 영어를 쓰는 인접국 나이지리아로 피난했다.

양측의 충돌은 극렬 분리주의자들의 지도자 아유크 타베가 영어 사용국 ‘엠바조니아 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을 선언했다가 지난해 12월 체포된 뒤 더 극심해졌다. 분리주의자들은 건국절이던 지난달 20일 소도시 방겜의 에쿠 사이먼 시장을 납치하고 경관 2명을 살해했다. 25일에는 정부에 체포된 활동가 7명이 징역 10∼15년을 선고받았다. 타베는 체포 뒤 행적이 묘연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카메룬은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들이 1960년과 61년 연달아 독립한 뒤 협력해 만든 연방공화국이다. 건국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두 언어를 공용어로 정했다. 그러나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용자들은 정부가 학교나 법원 등 공공영역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할 뿐 아니라 예산 편성에서도 홀대하고 있다 주장해 왔다.

분쟁의 여파는 아프리카 최대 골칫거리인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과의 전쟁에도 미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보코하람과의 주요 전선인 북부 차드 호수 지역에 배치돼 있던 정예병력이 이동해 영어 사용 지역 무력진압에 투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코하람 전선의 전력 공백으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비야 대통령은 대부분의 시간을 아내와 함께 스위스의 최고급 호텔에서 보내며 국정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에야 약 17개월 만에 내각회의를 소집했을 정도다. 그나마도 올해 10월 있을 대선 준비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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