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K팝 문법 새로 쓴 그녀들 ‘원더걸스’, 전설은 진행 중


 
걸그룹 원더걸스가 2015년 음반 ‘리부트(REBOOT)’를 발표했을 때 앨범 재킷에 사용했던 사진. 왼쪽부터 예은 유빈 혜림 선미.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07년,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했다. 저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이런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텔미, 텔미….” 바로 걸그룹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였다.

이 곡을 기점으로 가요계에는 이른바 ‘2세대 걸그룹’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중독성 강한 후크송(hook song)이었다. 원더걸스가 멤버들을 각각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인상적인 안무를 만들어내는지는 후발 경쟁자들에게 문법이 됐다.

원더걸스는 복고풍 콘셉트를 바탕으로 ‘유쾌함’에 초점을 둔 팀이었다. 이들은 친근함과 세련됨을 동시에 추구했다. 후속곡 ‘노바디(Nobody)’ ‘소 핫(So Hot)’ 같은 곡들도 크게 히트했고, 이들의 노래는 아시아 곳곳으로 깊숙이 뻗어나갔다. 이들은 팀명처럼 ‘경이로운(Wonder)’ 순간들을 만들어냈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성과는 두드러지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해외의 팬덤 커뮤니티나 뉴미디어를 공략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지나친 ‘정통파 전략’을 구사했던 셈이다. 멤버들은 지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국내 활동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원더걸스는 2011년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등 좋은 곡들을 발표했다. 하지만 데뷔 초에 일군 성과를 재연하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발표한 ‘리부트(REBOOT)’ 음반은 놀라웠다. 1980년대 장르인 ‘프리스타일’을 활용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곡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아이 필 유(I Feel You)’는 달콤한 멜로디가 인상적이었다. 멤버들은 아름답고 멋지며 유쾌했다. 원더걸스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듬해 이들은 직접 쓴 곡 ‘와이 소 론리(Why So Lonely)’로 쿨하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을 과시했다. 지난해에는 싱글 ‘그려줘’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해체 소식을 전했다. 멤버들은 이후 조금씩 새로운 삶에 시동을 걸고 있다.

멤버 중 한 명인 예은은 ‘핫펠트’란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그의 가사는 묵직한 감정을 잘 표현하는 목소리와 함께 진한 인상을 남긴다.

또 다른 멤버인 선미는 차가운 열정을 날카롭게 담아낸 싱글 ‘가시나’와 ‘주인공’을 발표했었다. 퍼포먼스와 영상과 음악이 결합해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이었다.

팀에서 퇴폐미와 귀여움을 동시에 보여줬던 혜림은 최근 번역가가 됐다. 칠레의 페미니즘 시인 마조리 아고신이 안네 프랑크를 소재로 쓴 작품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를 번역했다. 팀에서 랩을 맡았던 유빈도 최근 솔로 데뷔를 선언했다. 그는 5일 싱글음반 ‘숙녀’를 발표한다. 원더걸스의 유쾌함을 계승한 곡일 것으로 보인다.

원더걸스는 ‘2세대 걸그룹’의 포문을 열었다. K팝의 문법을 새롭게 썼으며, K팝 역사상 가장 멋진 재기를 보여줬다. 팀의 해체 이후 멤버들이 각각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원더걸스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먼 미래에 우리가 되새길 원더걸스의 ‘무게’는 지금 느끼는 것과 많이 다를 듯하다.

<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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