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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정권과 판결 흥정’ 양승태 대법원 수사 받을까



“체제 위협 세력에 단호히 대처” 정권 입맛 맞는 판결 열거한 뒤
“상고법원 도입 BH 설득” 적시… 판결을 거래 대상으로 활용
“고발 대신 징계” 특조단 의견엔 현직 판사 “나라도 고발” 반발


“특조단도, 대법원장도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신다면 내가 고발하겠습니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는 차성안(41·사법연수원 35기) 판사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려 법관 동향파악 및 재판 개입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 뜻을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형사고발보다 (내부) 징계 절차가 적정하다”는 의견을 내자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이래 1년여간 세 차례 조사를 거쳐 도출된 사실상 최종 보고서 성격을 갖는다. 특조단은 “과거 잘못에 대한 청산의 의미이자 치유와 통합을 통해 사법부의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법원의 문제는 법원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뜻과도 맞닿는 대목이다.

그러나 차 판사의 경우처럼 사건 처리 방향과 관련한 내부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주말 내내 조사보고서를 검토하면서 후속조치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만간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개편방안, 재판독립침해 방지대책 등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국정에 사법부 최대 협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퇴임식에서 “정치적 세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사법부 독립을 흔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양 전 대법원장 자신이었다.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문건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 왔음”이란 사법부의 자평(自評)이 담겼다. 행정처는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했다”며 “자유민주주의 수호 판결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적었다. 박근혜정부의 보수 코드에 맞춰 사법부의 판결 방향을 세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대법원은 실제로 2013∼2015년 과거사 피해자들의 국가 배상 청구 기간과 범위를 아주 좁게 제한하는 판결을 연이어 내놨다. 박정희정권 당시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도 “고도의 정치행위이므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행정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했다”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선동 사건,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 등의 유죄 판결을 거론했다. 경제 사건에 대해서도 “단순히 법리적 검토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고려했다”며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등을 지목했다.

‘양승태 코트’가 지난 정부의 국정 철학과 맞춘 판결들을 취합한 뒤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도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이 목표였다. 행정처가 만든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문건에는 “발상을 전환해 비서실장, 특보를 설득·활용하는 우회 전략”이 필요하다고 돼 있다. 구체적 접근 방법으로는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이라는 방안을 세웠다. 사법부의 판결을, 사법부 사업 추진을 위한 흥정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현직 판사 “내가 고발하겠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엇갈린다. 특조단은 “직권남용죄 적용에는 논란이 있고 업무방해죄는 성립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그 밖의 사항도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법 독립을 침해한 책임을 형사적으로 묻긴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차 판사는 “행정부에서 이런 식의 조직적 사찰행위가 일어나 직권남용 등의 죄로 기소됐을 때 무죄를 선고할 자신이 있느냐”며 “잘못을 저지른 판사가 동료라고 면죄부를 주면 누가 법원 재판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의 결심만 남겨둔 상황이다.

앞으로 행정처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지난해부터 수차례 접수했지만 “사법부 자체 조사 결과를 우선 보겠다”며 관망세를 보여 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상고법원 설치’ 과욕이 화 불렀다

2015년 대법원서 무슨 일이
양승태 대법원장 최대 역점 사업 “목표만 보다 헌법 가치 훼손”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은 지난 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주요 원인으로 “무리한 상고법원 입법화”를 꼽았다. 상고법원 제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내 집착한 정책이다. 항소심(2심) 법원과 대법원(3심) 사이에 상고법원이란 별도의 법원을 추가해 대법관들은 주요 사건에만 집중하고 상고법원에서 일반 3심 사건들을 심리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대법관 1명당 연간 30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상고법원 추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재판이 사실상 4심제로 진행될 우려가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상고법원 설치로 고위 법관의 자리가 늘어 인사 적체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셈법도 논란이었다. 대법관 증원 등 다른 개선 방안이 있음에도 상고법원만을 과도하게 추진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상고법원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2016년 5월 제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특조단이 공개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2015년 5월 유력 일간지를 우군으로 포섭해 상고법원 홍보 창구로 활용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그해 7월 행정처는 법원 내의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윤리 규정 위반 여부를 검토했다. 당시 연구회는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인사모)라는 소모임을 개설했는데, 이것이 법관 윤리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 행정처의 시각이었다. 이에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연구회 내 소모임 개설만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행정처가 내부 소모임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인 건 상고법원 때문이었다. 인사모에 소속된 법관들은 대체로 상고법원 제도를 반대하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같은 해 8월엔 민일영 대법관 후임 제청을 위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양 대법원장의 오찬 회동이 예정돼 있었다.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내부 비판 여론이 등장하는 걸 통제하려 한 것이다. 특조단은 “상고심 개선 내지 강화라는 정책 목표에만 몰입한 나머지 재판의 독립과 표현의 자유 같은 헌법적 원칙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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