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생전 그의 모습처럼 조용하고 차분했다. 과한 의전이나 격식을 마다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 및 친지를 중심으로 발인이 이뤄졌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인근에 수목장(樹木葬)으로 안장됐다.
구 회장의 발인은 22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비공개로 시작됐다. 유족과 친지들을 중심으로 발인제가 진행된 후 8시30분쯤 운구 행렬이 언론 등에 공개됐다.
행렬 맨 앞에 구 회장의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영정을 들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표 뒤로 구 회장을 보필했던 비서를 비롯한 직원 6명이 관을 들고 장의차로 향했다. 후계자인 구광모 LG그룹 상무를 비롯한 유족 등은 그 뒤를 따랐다. 구 상무는 아버지의 관이 장의차에 실릴 때 가장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구 회장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도 그 뒤에서 목례했다.
구본능 회장을 비롯한 일부 유족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으나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발인이 마무리됐다. 구 상무 역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유족 및 친지 외에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 계열사 임원과 허창수 GS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고인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도 자리를 지켰다. 이 중 박 회장은 고인과 동갑으로 연세대에 같이 입학하고, 두 집안이 혼인으로 이어져 있는 친분으로 인해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찾았다.
유족들은 운구 과정 이후 장례절차는 비공개로 진행했다. 생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시신을 화장한 후 그 유해를 곤지암 부근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 형태로 장례 절차를 마무리했다. 고인은 회장 취임 다음 해인 1996년 기자간담회에서 “국토가 묘지로 잠식되고 있다. 나는 죽으면 화장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새 관련 책을 낼 정도로 새와 숲을 좋아해 자연보호에도 관심이 높았다. 2013년 6월에는 자신의 아호를 딴 생태수목원 ‘화담(和談) 숲’을 개장하기도 했다. 고인이 97년 설립한 LG상록재단 역시 자연 환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공익재단으로 장묘문화 개선 활동도 펼쳐왔다. 발인에 참석한 이 전 장관은 “(재벌가에서) 이렇게 간소하게 수목장을 지내는 것은 처음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