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몸에 난 상처보다… 어릴 적 정서적 학대가 더 무섭다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① 그때그때 다른 법원 판단
② 가정 내 훈육과 학대
③ 교육기관 내 훈육과 학대
④ 정서적 학대도 엄연한 위법
<2부> 해외 사례
<3부> 대안을 찾아서


성장과정 내내 ‘트라우마’ 뿌리 깊은 상흔을 남겨
부모나 교사들이 학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많아
자아개념을 손상시켜 아이의 미래 망칠 수 있어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파인 상흔이 더 깊을 때가 있다. 아이에 대한 학대가 그렇다. 정서적 학대는 성장과정 내내 뿌리 깊은 상흔을 남긴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정서적 학대는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양육을 이유로 벌인 행동이어서 행위자인 부모나 교사들이 학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신체적 폭력보다 정서적 폭력에 대한 감수성도 약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무시·모욕, 좁은 공간에 가두는 행위, 언어폭력, 잠을 안 재우거나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비교·차별, 왕따, 집 밖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행위 등을 정서적 학대 사례로 본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 일어나는 정서적 폭력이 쉽게 발견된다.

다영(가명·10)이의 아버지는 일상적으로 다영이를 때리고 윽박질렀다. 그날도 그랬다. 다영이가 실수로 학교 준비물인 수영가방을 챙겨가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다영이의 수영가방을 찾아서 가져다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다영이를 바꿔 달라고 했다. “학교 준비물을 왜 잘 안 챙겨 갔느냐, 수영가방을 어디 뒀는지 왜 모르냐,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어떡하라는 거냐”며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법원은 다영이 아버지가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고 봤다. 그동안 다영이에게 가했던 신체적 학대도 함께 유죄로 인정돼 아버지는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아동학대 관련 판결문 85개 중 정서적 학대를 다룬 것은 20건이었다. 유형은 다양했다. 깻잎반찬을 강제로 먹인 어린이집 교사, 물총을 사라고 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고 아이스크림 6개를 한번에 먹게 한 아버지, 잠을 안 잔다고 캄캄한 방에 아이 혼자 둔 교사, 우는 아이의 입에 거즈 손수건을 물린 교사 등이 모두 정서적 학대 혐의로 법정에 섰다.

학대 사실은 대부분 인정됐지만 실형은 3건에 그쳤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모두 피해 아동이 다수거나 신체적 학대도 포함되는 사례였다. 나머지는 집행유예가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6건 나왔다. 1건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서적 학대가 분명하지만 모욕적 발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유아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나기도 했다. 어린이집 교사 세 명이 교실에서 두 살밖에 안 된 A군에게 “이 새끼 먹는다. 선생님, 아휴 찌끄레기(찌꺼기의 사투리) 먹는다”고 하거나 “뭘 봐 찌끄야” 등 아이를 찌꺼기에 비유하는 모욕적 언사를 지속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아직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유아는 찌끄레기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며 정서적 학대가 아니라고 봤다. 한 보육기관 관계자는 “아이가 알아듣지 못해 학대가 아니라 해도 보육방식으로선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했다.

법원은 정도가 심하지 않은 체벌을 정서적 학대로 판단해 양형 참작 사유로 들기도 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B씨는 아이들이 서로 다투며 말을 듣지 않자 3세 C군의 머리를 손으로 때린 후 구석으로 잡아끌고 갔다. 재롱잔치를 준비할 때도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자 빨간색 천으로 싼 스펀지로 2세 D군의 머리를 한 차례 때렸다. 법원은 “생후 28개월에 불과한 아동의 나이를 고려하면 정당행위라 볼 수 없다”면서도 “신체적 학대행위에 이르지 않고 정서적 학대행위에 그쳤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도 물리적 폭력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다. 2016년 춘천지법은 정서적 학대 사건에서 “방법이 다소 과격하지만 폭력이나 가혹행위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낮잠을 자려고 누워 있던 아이에게 도깨비가 나오는 영상을 보여준 보육교사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이 보육교사는 밥투정을 하는 세 살짜리 어린이 4명에게서 식판을 빼앗거나 밥을 안 주고, 다른 친구들이 밥 먹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지성애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기에는 자아에 대한 개념이 주변에서 보이는 반응이나 관계형성을 통해 만들어진다”면서 “정서적 학대를 받으면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부정적인 사람이 돼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보일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정서적 학대는 눈에 보이는 피해를 남기진 않지만 아이의 자아를 손상시켜 미래를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서적 학대가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시기별로 다르다. 도현석 경기화성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학대를 받은 아이가 영아이면 수면장애가 생기거나 자주 울고, 유아이면 관심을 끌기 위한 이상 행동을 한다”며 “초등학생부터는 등교 거부, 우울증, 또래관계 악화, 의사소통 장애를 보이거나 극단적으로는 자해나 자살 시도까지 한다”고 했다. 그는 “학대는 그 수준이 낮아도 지속성이 있으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벼운 학대라고 심각성을 낮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예슬 조민아 기자 smart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