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회담 앞서 ‘핵실험장 폭파’… 美에 성의 표시

노동신문 13일자에 실린 북한 외무성 공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오는 23∼25일 폭파시켜 폐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동신문


北, 23∼25일 폐기… 말 아닌 행동 비핵화 첫걸음
韓·美·中·러·英 기자단 취재 허용… 日만 쏙빼
전문가는 안 불러, 핵능력 노출에 부담 느낀 듯
트럼프 “우아한 제스처”… 백악관 “검증이 핵심”


북한이 오는 23∼25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파시켜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전 ‘미래 핵’을 포기하는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완전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의도다. 다만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 과정을 검증할 전문가 초청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은 12일 공보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 의식은 5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일기 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외무성은 이어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를 완전히 폐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설비와 연구소, 경비구분대의 구조물을 철거한다”고 폐쇄 절차를 설명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자에 외무성 공보 전문을 그대로 실었다.

핵실험장 폐쇄는 핵무기 제조 능력을 없애는 조치 중 하나다. 북한이 지금까지 6차례 핵실험을 했지만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하기 위해선 추가 핵실험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이번 발표는 최근 북한을 재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북한에 ‘과감한 조치’를 주문한 이후 나온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폐쇄 시한(5월 중)과 대외 공개 방침을 밝힘으로써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외무성이 이날 발표한 결정사항에 전문가 초청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핵능력 노출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핵 검증 전문가들이 북한에 들어가 핵실험장을 사찰·검증하면 북한의 핵 능력이 어느 정도 파악될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핵실험장 폐쇄라는 대형 이벤트보다 핵 능력 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상황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검증 절차까지는 나가지 않고 비핵화 의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선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계획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를 볼 때 전문가 초청 문제가 추후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핵실험장이 협소한 점을 들어 국제기자단의 현지 취재활동은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기자들로 한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소식을 “우아한 제스처”라고 호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북한이 6·12 대형(big)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달 중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발표했다”며 “고맙다, 매우 영리하고 우아한 제스처다(Thank you, a very smart and gracious gesture!)”라고 썼다. 백악관은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제 전문가들에 의한 사찰과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가 비핵화의 핵심 조치”라고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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