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김정은… 회담 성사 功 돌리며 ‘트럼프 띄우기’



“로켓맨” “늙다리” 말폭탄서 서로 칭찬하는 분위기 연출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 대화 통한 노력 높이 평가”
트럼프 “ 김 위원장 매우 많이 열려 있어… 그와의 만남 영광”


‘꼬마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조롱하며 말 폭탄을 주고받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훈훈한 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공(功)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조만간 대좌할 두 사람이 협상 상대로서 최소한의 신뢰는 확보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9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고 “사의를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다. 이어 “다가온 조·미(북·미) 수뇌상봉과 회담이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북·미 관계 정상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트럼프 띄우기는 올해 초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을 향해선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강경론을 유지했다. 또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대놓고 자극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극에 달했던 북·미 간 사생결단식 대립의 연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로켓맨의 자살 임무”라고 표현하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유엔총회 연설은 미 외교안보라인의 사전 조율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이 그대로 읽은 미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그 전의 돌출성 발언과는 무게가 달랐다. 그로부터 이틀 뒤 김 위원장은 본인 명의 성명을 내고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맞받았다.

표면상 먼저 달라진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대뜸 “김 위원장이 매우 많이 열려 있고 그와의 만남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 변화는 물밑에서 이뤄진 북·미 간 긍정적 움직임의 영향이자 트럼프식 협상 전략으로 해석됐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그가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라며 “북한 매체들이 미 국무장관을 ‘미합중국 국무장관’이라고 공식 호칭한 것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핵보유국이 됐기 때문에 미국이 굽히고 들어왔다는 뉘앙스를 곳곳에서 풍겼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북한을 찾아 “김 위원장이 바쁘신 시간을 내어 만나준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는 내용 등이다.

외교소식통은 “북한 매체들은 그동안 ‘우리가 전략국가로서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정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복선을 깔아놨다”며 “북한 주민들로서는 김 위원장의 트럼프 칭찬을 급격한 변화로 여기기보다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고 있구나’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을 마스터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이 책은 김 위원장과 가까운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데니스 로드맨이 지난해 6월 방북 당시 김 위원장에게 선물했다. 크게 생각하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며,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히고, 언론을 이용하라는 등의 트럼프식 협상 원칙이 담겨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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