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깨지 않으면서… 김정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뒤 8일 중국 다롄 국제공항의 전용기 내에서 환송 나온 중국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전용기 내부에 테이블과 위성전화기, 소파 등이 갖춰진 김 위원장 전용집무실이 보인다. 노동신문


패싱 우려한 中 심리 이용 북·중 vs 美 대립구도 조성
북·중 밀착 과시하면서도 미국인 억류자 석방 확정
양측 관리하며 입지 넓히고 비핵화 로드맵 막판까지 조율
中 “김정은 방중, 北서 제안”


북한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8일 방중을 통해 북·중 밀착을 과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미국인 억류자를 석방키로 확정하면서 북·미 대화의 판을 흔들지는 않았다. 북한과 미국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비핵화 로드맵을 위한 막판 조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그동안 대립해 왔다. 북한이 단계적·동시적 조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비핵화를 주장한 반면 미국은 북한의 선제적 핵 포기라는 강경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전격적으로 중국에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에서 배제될까 초조해하는 중국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재차 강조함으로써 비핵화 방법론과 관련해 북·중 대 미국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한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다. 북·중 정상이 함께 다롄(大連)에서 중국의 대미(對美) 전략자산인 항공모함을 관람하는 도발적 메시지는 보내지 않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방북을 받아들이고 미국인 억류자 3명을 송환키로 했다.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어느 한편에 편중되지 않고 두루 관리하면서 외교적 입지를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과거 냉전 시절과 달리 남북, 북·미, 북·중 관계를 골고루 고려하면서 체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경제협력과 관련해 신속히 움직일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비핵화 방법론과 관련한 막판 절충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평안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미국인 억류자 석방, 한·미 연합 군사훈련 용인 등 선제적 카드를 내놓은 대가로 미국에 비핵화 협상 문턱을 낮출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이 어떤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북한에 제시할지, 또 어떤 속도로 그것을 이행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매우 이례적으로 ‘경애하는 동지’라고 호칭했다. 김 위원장은 방중 일정 종료 후 시 주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우리를 따뜻이 맞이하고 성심성의로 환대해준 경애하는 습근평 동지께 충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통상적으로 ‘경애하는 동지’ 호칭은 생존하는 최고 지도자에게만 붙는다. 김 위원장은 3월 28일 시 주석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그를 ‘당신’이라고만 했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때도 문재인 대통령을 ‘대통령님’으로 높여 불러 눈길을 끌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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