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목적은 신뢰 구축… 체제 보장 우선돼야”



단계적·동시적 조치 재강조… 리비아식 해법에 거부감
비핵화 전 ‘한반도 문제 해결’ 평화협정 체결 의미할 수도
北, 회담 결렬 땐 中 더 밀착… 中도 대북 압박 이탈 전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표명했다.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이 이뤄진 다음에야 항구적 핵 폐기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일 강조하는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원칙에 맞서 북·중 공조가 만들어진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6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 목적이 ‘북·미 간 신뢰 구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까지 포기해야 한다고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김 위원장은 북·미 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출구’가 아니라 ‘입구’에 불과하다고 강조함으로써 미국이 원하는 일방적 핵 폐기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처음 밝힌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대북 불가침 확약 등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취할 때마다 거기에 맞춰 북한도 단계적으로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강조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선 비핵화, 후 보상)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미 정상회담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서로 간의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계속 이것도 포기하라, 저것도 포기하라는 식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의미”라며 “김 위원장은 단계적 접근법에 따라서만 협상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미국에 밝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김 위원장이 중국에서 이를 언급한 것도 중국의 지지를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부연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최종적 비핵화’ 전단계로 분명히 한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체제 안전보장 등이 모두 이뤄진 다음에야 궁극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핵 폐기에 앞서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북한이 영구적 비핵화보다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북한이 말로만 비핵화를 한다고 했지만 몇 가지 군사적 조치를 취한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지금 평화협정이나 주한미군 감축 등을 얘기하기에는 이르다”며 “북한 입장은 체제 보장이 되고 남한과 미국이 선의의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바로 비핵화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밝힌 내용은 중국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인 쌍궤병행(雙軌竝行·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논의의 동시 진행)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 자체부터 이 프로세스가 북·중 간 조율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향후 북한과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PVID 압박에 맞서 공조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끝내 결렬될 경우 중국에 더욱 밀착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북·미 회담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대북 압박 공조에서 탈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