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美에 견제구… 북·미 담판 앞두고 ‘中 끼워넣기’


김 위원장 “심각한 변화… 북·중 전술적 협동 강화”
회담 의제 막판 조율 과정 美 비핵화 기준 높여 잡자 ‘몰아붙이지 말라’ 메시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8일 중국을 전격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보내는 견제구다. 대량살상무기(WMD)까지 비핵화 대상에 넣어 영구적 폐기(PVID)를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향해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만의 일방적인 핵 포기라는 ‘굴복’이 아닌 북·미 간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7일 오후 열린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해 분석·평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이 전략적 기회를 틀어쥐고 북·중 사이의 전술적 협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강화해 나가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에 대해 말씀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심각한 변화’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북한의 비핵화 기준을 높여 잡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으로선 북·미 정상회담 전 협상력을 최대한 높이는 동시에 회담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결국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일 때와 중국을 뒤에 두고 있을 때 대미 협상력은 완전히 달라진다”며 “김 위원장은 중국이라는 파트너가 언제든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꺼낼 수 있는 일종의 협상전략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한 달 전인 3월 25∼28일에도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시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이 속전속결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강하게 몰아붙이던 때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후 첫 중국 방문으로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단숨에 복원하고, 중국의 입을 빌려 비핵화를 위한 ‘한·미의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43일 만에 이뤄진 두 번째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다시 ‘유관 국가의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언급했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막판 조율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기적으로 북·중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크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정하는 입구에서 소외되는 ‘차이나 패싱’을 경계하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단추를 잘못 꿰면 향후 북핵 문제의 처리 방향이 미국 주도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일본과도 대화하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상당부분 상쇄된다”며 “지금 시점에서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쪽은 중국”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방문한 랴오닝성 다롄은 북·중 경협의 거점이다.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 시험 운항 이벤트가 맞물려 북·중이 군사 밀월을 과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임 교수는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게 중국의 항모”라며 “북한이 항모 앞에서 중국과 군사 협력관계니 동맹이니 과시했다가는 미국이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등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조성은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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