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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와 자취] 철학과 삶의 방식 가르치고 떠난 ‘美 태권도 代父’


 
1957년 달랑 46달러 들고 渡美
의원 출신 제자만 350여명 둬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명’ 선정


‘미국 태권도의 대부’로 불려온 이준구(미국명 준 리·사진) 사범이 30일(현지시간)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이 사범은 홍콩의 액션배우 리샤오룽(李小龍), 전설의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등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범의 아들 지미 리는 이날 미국 워싱턴DC 지역매체인 WJLA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오전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히 잠드셨다. 아버지는 수년 전부터 대상포진 바이러스와 싸우셨고, 최근 합병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1932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 사범은 열여섯 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그는 육군 중위로 근무하던 56년 항공정비교육을 받기 위해 처음 미국을 방문했다. 이듬해 단돈 46달러를 들고 미국에 다시 가 정착한 그는 텍사스주립대 토목공학과를 다니면서 태권도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을 키웠다.

WJLA는 “이 사범은 반세기 전쯤 미국에 태권도를 소개하면서 전설적인 무술가로 발돋움했고 62년 워싱턴에 ‘준 리 태권도’를 차렸다”며 “65년부터 워싱턴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태권도 강습이나 스파링을 하면서 인맥을 쌓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사범은 제임스 클리블랜드 하원의원이 강도를 당했다는 소식에 전화를 걸어 “태권도를 배우면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로 설득해 태권도 교실을 만든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이 사범에게 태권도를 배운 의원 출신 문하생은 3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범은 2000년 미국 정부가 선정한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인’의 한 명으로 선정돼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기도 했다.

프란시스 피네다 준 리 태권도 관장은 “이 사범의 태권도 전파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됐다”며 “그는 태권도에서 발생하는 부상을 줄이기 위해 안전장비를 개발했고, 태권도에 클래식 음악과 발레 스타일의 안무를 추가해 스포츠 혁명을 일으켰다”고 업적을 소개했다. 이어 “이 사범의 가르침 대부분은 태권도가 아닌 철학과 삶의 방식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덧붙였다.

준 리 태권도의 마스터 강사인 배리 샤켈포드는 “이 사범은 모든 사람들이 태권도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제 20, 30대 젊은이뿐 아니라 고령자와 아이들도 태권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례식은 오는 8일 오전 11시 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린 성경교회(MBC)에서 열린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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