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백령도… 남북 정상회담장의 ‘미술 정치’

남북 정상이 악수하고, 서명하고, 만찬을 나눴던 판문점 평화의집에는 각각 신장식 작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민정기 작 '북한산', 신태수 작 '두무진에서 장산곶'(위 사진부터)이 걸려 자리를 빛냈다. 국민일보DB


가로 폭 7m 가까운 ‘금강산’ 등 벽화처럼 큰 대작… 시선 압도
대중성 갖추면서 탈이념적… 그림 소재, 회담 동선 맞춰
장소가 주는 상징성 부각 환송행사 첨단기법으로 피날레


모든 권력자는 미술적 이미지를 정치에 활용했다. 지난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이미지 정치’가 십분 발휘됐다. 이에 대한 미술계의 평가는 어떨까.

30일 미술계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의 ‘미술 정치’ 키워드는 스케일의 미학, 대중성의 미학, 무이념의 미학, 동선과 상징의 미학 4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회담과 귀빈 만찬이 이뤄진 평화의집 1∼3층을 채운 작품들은 거의 모두 벽화처럼 엄청난 크기로 시선을 압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2층 타원형 테이블 뒤에 걸린 신장식 작가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181×681㎝, 2001년 작)은 가로 7m에 가까운 스펙터클한 작품이다. 판문점 선언 서명식의 배경이 된 1층 로비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264.5×452.5㎝, 2007년 작)도 가로 4m를 훌쩍 넘는다. 역시 로비의 김준권 작 ‘산운(山韻, 500×180㎝, 2009년 작)’은 판화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가로 5m의 대작이다.

간택된 작품들은 소재가 주는 즉각적 이해, 즉 대중성을 갖추면서도 탈이데올로기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강산 북한산 백령도 등 우리 강산의 특정 장소를 유화와 아크릴 등 익숙한 매체를 사용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강토가 주는 같은 민족이라는 느꺼운 감동도 고려됐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난해함, 즉 산수화를 그리더라도 퍼포먼스와 결합하는 식의 동시대 미술 어법의 추세와는 거리가 있다.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특히 인물을 배제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인물은 옷이나 표정 등에서 계급·계층적 요소가 드러날 수 있어 이데올로기적 불편함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참여작가 중 민정기 김준권 작가가 1980년대 미술을 통해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쳤던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민중미술의 강세를 예감하는 시각도 있다.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각각의 그림 소재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선에 잘 맞춰, 그 장소가 갖는 상징성을 부각시켰다”고 호평했다. 예컨대 김 위원장이 처음 입장한 로비에서는 김준권 작가의 ‘산운’의 그윽한 수묵의 정취가 긴장감을 풀어줬고, 민정기 작 ‘북한산’은 남한의 명산을 통해 환영의 뜻을 표했다. 2층 회담장의 금강산 그림은 과거 관광 사업을 통해 금강산이 남북 화해의 상징이 된 점, 그리고 중단된 이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 곧 남북화해와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끊임없이 건배 제의가 오간 만찬장의 신태수 작 ‘두무진에서 장산곶’(2014년 작)은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백령도를 그린 것인데, 서해 최전방을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자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훈민정음 서문을 소재로 한 김중만의 사진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2018년 작)은 국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꿈꿨던 세종대왕의 정신을 남북 지도자에게 당부하기 위해 김정숙 여사가 골랐다고 한다.

또한 청와대가 회화뿐 아니라 판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고르는 등 ‘디테일의 정치’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마지막 야간 환송행사는 평화의집 건물 자체를 스크린으로 삼아 레이저를 쏘는 미디어 파사드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미술평론가 김노암씨는 “첨단기법이지만 대중에게 감각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술계는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에 미술을 장소의 분위기에 맞게 상징적으로 잘 활용한 사례”라며 후한 점수를 매겼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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