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이 뭘 원하는지 알아… 그건 바로 존중”

프랭크 자누지 미국 싱크탱크 맨스필드재단 회장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재단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최소한의 요건이 충족됐다”고 말했다.


프랭크 자누지(54) 미국 싱크탱크 맨스필드재단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을 스몰야구(small baseball)에 비유했다. 홈런 한 방을 노리는 큰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진루타를 때리는 작지만 실속 있는 야구라는 것이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27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그건 바로 존중(respect)”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이 선물을 주기 위해 과감하게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지켜봤다는 자누지 회장을 워싱턴DC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어떤 성과를 낳았다고 보나.

“북한이 비핵화의 목표에 동의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충족시켰다. 북한이 그 목표를 부인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안 만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 로드맵을 협상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비현실적인 목표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절차의 투명성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영변 중수로 발전소는 물론 건설 중인 경수로 발전소의 제거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가 경수로도 포함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북한에는 무기 생산용 원전만 있지 평화적 원전은 없다.”

-여전히 북한이 대화를 시간벌기로 활용한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당한 우려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과 미사일을 넘겨준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걸 설득하려면 비핵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한 단계씩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번에도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시간을 두고 북한이 약속을 입증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북한에 1년 이내에 비핵화를 완료할 것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1년 내 비핵화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 북한 핵시설은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 모른다. 일본의 경우를 봐라. 후쿠시마 사고 원전을 봉쇄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나. 원자로 폐쇄에만 1년 이상 걸린다. 핵탄두는 빠르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 4000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2004년 영변을 방문해 원자로 불능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1년 이내 비핵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비핵화 과정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상호 조치와 연계될 것이다. 전쟁종식, 평화협정 서명, 북·미 간 외교관계 정상화 등도 시간이 걸린다. 한반도는 70년간 분단돼 있었다. 12개월 안에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것은 없다. 북한이 모든 핵시설을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도록 제거하더라도 30년이 지나 그들이 다시 만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단계별로 제재 완화 등 조치를 요구하는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자세히 보면 북한이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어떤 건 비핵화와 관련돼 있고, 어떤 건 미사일 활동과 연계돼 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활동에서 구체적 요건을 충족시키면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거나 해제될 수 있다. 미국의 독자 제재도 북한의 행동이 달라지면 완화되거나 해제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할 전략은 뭘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94년 김일성 주석에게 줬던 것과 같은 선물을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주려 할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당시 그의 방북을 돕는 국무부 팀에게 물었다. ‘김일성이 내게 원하는 게 뭐냐’고.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카터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은 나의 존중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에게 존중을 선물하려 한다.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엄청난 선물이다. 존중을 선물한다는 건 북한 지도자에게 대단한 가치가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트럼프 대통령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를 만나 종전을 선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지혜로운 분에게 답례로 이것을 약속하겠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천할 테니 함께 노력합시다’라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짓말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공할까.

“순진하게 접근해서도 안 되지만 비핵화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북한과의 합의가 모두 실패했다고 재단한다. 그렇다고 해서 2018년 합의도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 환경이 달라졌고, 세상이 달라졌고, 지도자들이 모두 달라졌다. 왜 똑같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첫째 오늘의 북한은 11년 전과 다르다. 그때와 달리 김 위원장은 경제 성장의 업적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핵 억지력을 발전시켰다.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다졌다. 집권 6년이 지나면서 그의 입지는 대단히 강해졌다. 중국, 한국, 미국에 이어 어쩌면 일본, 러시아와도 관여할 자신감을 가졌다.

둘째 문 대통령은 집권한 지 만 1년이 안 돼 아직 4년의 시간이 있다. 평화와 비핵화의 로드맵을 실천할 시간이 있다. 북한도 문 대통령에게 많은 신뢰를 갖고 있다.

셋째 미국의 대통령도 과거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뛰어난 세일즈맨이다. 그는 북한과 협상을 할 것이다.”

-당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는데.

“내부 정보를 갖고 말한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 가는 걸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알고 있다. 김 위원장을 어디서 만나든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북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의미는 같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만일 스웨덴에서 김정은을 만난다면 그 역사를 스웨덴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 있기를 원하지 공유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역사가 평양 방문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사람이다. 그가 평양에 간다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비견될 것이다.”

■자누지 회장은
北·中·日 정통… 영변 원자로 불능화 지켜봐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회장은 북한과 중국, 일본 등에 정통한 동아시아 전문가다. 국무부 정보분석관 출신으로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의 고문을 지냈다. 당시 외교위원장은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었다. 국무부 정보분석관 시절에는 북한을 방문해 영변 원자로 불능화 과정을 관찰했다. 또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 위해 1994년 방북을 앞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 정세를 브리핑하기도 했다. 예일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을 마쳤다. 2014년 4월에 맨스필드재단 회장에 취임했다. 주일본 미국대사를 지낸 마이크 맨스필드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재단은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해와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1983년 설립됐다.

워싱턴=글·사진 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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